"美, 한마디 상의 없이 시리아서 철군… 우리에게 빠르게 등 돌리고 있어
유럽은 지정학적 파워로서 자리매김,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메르켈 "극단적 발언" 즉각 반박… 러시아는 "마크롱 말은 金言"환영
그는 "미국이 전략적인 이슈들에 대해 우리(유럽)에게 빠르게 등을 돌리고 있고, 어떤 식의 전략적 의사 결정이 이뤄지든 간에 미국과 다른 동맹국 사이에 사전 조정이 없다"면서 "유럽은 벼랑 끝에 서 있으며 지정학적 파워로서 자리매김할 수 없다면 우리(유럽) 운명을 컨트롤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크롱은 미국이 동맹국과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시리아에서 철군을 결정했고, 또 다른 나토 회원국인 터키는 다른 회원국들의 반대와 비판에도 시리아를 침공해 IS(이슬람국가) 격퇴전 동맹이었던 쿠르드족을 공격한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마크롱은 특히 "유럽의 계획을 공유하지 않는 첫 번째 미국 대통령을 보고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트럼프가 서방 국가들이 오랜 협상 끝에 이뤄낸 이란 핵 합의와 파리기후협약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한 것 등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중국이 부상해 미국과 유일한 글로벌 파워가 될 가능성이 있고,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비롯한 정치 불안으로 유럽 내부가 약화되는 시점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코노미스트 취재진이 나토를 존속시키는 핵심 조항인 '북대서양 조약 5조'에 대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보는가'라고 묻자, 마크롱은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회의론을 폈다. 북대서양 조약 5조는 나토의 한 회원국이 군사 공격을 받으면 나토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대응한다는 규정으로서 집단 방위를 지향하는 나토의 핵심 가치가 담겨 있다. 마크롱은 "만약 알 아사드 시리아 정부가 터키에 보복한다면 우리가 북대서양 조약 5조를 충실히 이행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제멋대로 구는 터키를 위해 유럽 국가들이 제 일처럼 나서겠느냐는 것이다. 이어 "유럽이 깨어나야 할 때이며, 나토의 현실을 재평가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유럽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며 취임 초기부터 주창한 독자적인 '유럽 연합군'의 필요성도 다시 강조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마크롱의 '나토 뇌사론'을 즉각 반박했다. 메르켈은 7일(현지 시각) 베를린에서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과 회담을 가진 이후 "나토에 문제가 있고 협력을 강화할 필요는 있다"면서도 "마크롱의 말은 극단적이며 그런 일방적인 판단은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메르켈은 "대서양 양안 동맹은 필수적이고 나토를 대체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나토에 균열이 있다는 지적까지는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 나토 없이 유럽이 독자적인 방어를 하기에는 부담이 크다는 의미다. 올해 29개 나토 회원국 전체의 국방 예산을 합치면 1조360억달러(약 1198조원)이며, 그중 미국 비중은 70.5%에 이른다. 독일은 5.2%, 프랑스는 4.9%의 비중이다. 병력 면에서도 나토 전체 병력 325만8000명 중 미군이 41%를 차지한다.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맞아 독일을 방문 중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마크롱의 '나토 뇌사' 판단에 큰 경계심을 드러냈다. 폼페이오는 "대서양 양안 협력이 30년 전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가져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나토는 여전히 중요하고 긴요한 파트너십"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나토의 과거 역할을 높게 평가했지만, 나토의 현재와 미래 비전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유럽 회원국들이 방위비를 제대로 분담하지 않는다며 나토를 공격해왔다.
러시아는 마크롱의 주장에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마크롱의 말은 '금언(golden words)'"이라고 치켜세우며 "나토의 현 상황을 정확하게 정의하는 발언"이라고 했다. 마크롱은 올 들어 유럽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 러시아를 끌어당기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는 이코노미스트 인터뷰에서도 "우리(유럽)는 러시아와 전략적인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BBC는 오는 12월 3일부터 이틀간 런던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서 마크롱의 '나토 회의론'에 대해 다시 한 번 격론이 벌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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