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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구광모 “AI 기업들 속도감… 中 추격도 위협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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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그룹 사업 보고회서 ‘속도’ 강조

최근 한 달간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13개 계열사 CEO(최고경영자)들이 순차적으로 진행한 사업보고회의 핵심 키워드는 ‘속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보고회는 구 회장과 그룹 각 계열사 최고경영진이 올해 경영실적과 내년도 사업 계획을 논의하는 자리다. 구 회장은 잇단 회의에서 “미래 지속 가능성 관점에서 선제적이고 속도감 있는 실행이 중요한 때”라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LG는 4대 그룹 중 현대차에 이어 두 번째로 그룹 인사를 단행했다. 이 같은 배경에는 전자·석유화학·이차전지 등 주력 사업의 불황, 중국을 비롯한 경쟁국의 거센 추격뿐 아니라 인공지능(AI) 기업들이 불과 1년여 만에 세상을 완전히 바꾸는 상황에서 기존 공급망 관리(SCM) 개선 같은 소극적 변화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

구 회장은 이번 인사에서 본인이 그룹에 영입한 ‘전략통’ 홍범식 사장을 LG유플러스 대표로 내세우고, 신사업 ABC(AI·바이오·클린테크) 분야에서 임원 넷 중 하나(23%)를 발탁하고, 속도감 있는 변화를 강조하고 나섰다. 올해로 취임 6년째를 맞는 구 회장이 ‘구광모식 경영’을 본격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선일보

구광모(왼쪽) LG그룹 회장이 지난 6월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로봇 스타트업 ‘피겨 AI’를 방문해 인공지능(AI)이 접목된 인간 형태의 로봇을 살펴보고 있다. 구 회장은 회사 설립 18개월 만에 첫 로봇을 내놓고, 발 빠르게 AI를 접목한 이 기업의 빠른 변화 속도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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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대부분 사업 빨리 변해야”

구 회장이 ‘속도’를 강조하고 나선 배경엔, 글로벌 경쟁사의 추격이 그룹의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실제로 전자, 디스플레이, 화학, 에너지솔루션 등 주요 계열사들의 보고에서 모두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업체들의 파상공세 상황이 거론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9월 구 회장 주재로 열린 LG 사장단 워크숍에서 조주완 LG전자 사장이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가전전시회 IFA 참관 내용을 공유하며, “중국 기업들이 단순히 원가 경쟁력이나 공급망 관리뿐 아니라 기술력, 디자인 등에서 빠른 속도를 내며 위협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보고한 것의 연장선상이다. 이에 대해 구 회장은 “전자뿐 아니라 그룹 내 대부분 사업에 빠른 변화가 필요하다”며 “변화의 실행력을 높여나가자”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구 회장은 AI 기업들의 속도감을 인상 깊게 생각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6월 미국 실리콘밸리의 AI 로봇 스타트업 ‘피겨AI’를 방문했는데, 회사 설립 18개월 만에 첫 로봇을 내놓고 불과 두 달 만에 ‘오픈AI’의 기술을 접목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로봇으로 변화시키는 스타트업 특유의 혁신과 속도에 큰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그래픽=이진영


◇조직 슬림화, 의사결정 단계 단축

지난 21일 그룹 임원 인사와 조직 개편에도 이 같은 분위기가 그대로 반영됐다. 대표적인 것이 ‘조직 슬림화’다. 올해 LG의 임원 승진 규모는 작년(139명) 대비 13% 줄어든 121명이었다. 동시에 C레벨 직속 조직을 확대해 의사결정 절차 단축에도 나섰다. 그룹의 새 먹거리를 발굴하는 ㈜LG 경영전략부문을 최고운영책임자(COO) 직속 조직으로 재편했고, LG디스플레이도 공정기술을 총괄하는 생산기술센터와 구매그룹을 CEO 직속으로 옮겼다. LG 관계자는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고 중복 기능을 없애 대외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자는 취지”라고 했다.

그룹 체질도 변하고 있다. 올해 신규 임원의 평균 연령은 40대(49세)였다. 또 올해 AI 분야에 1980년대생 임원 셋을 발탁하는 등 1980년대생 임원이 최근 5년 새 3배로 늘었다. 올해 21명의 연구개발(R&D) 임원을 신규 선임해, 그룹 전체 R&D 임원이 역대 최다(218명)를 기록한 것도 특징이다. 전자와 배터리 분야의 특허전문가 임원 2명을 각각 부사장, 전무로 승진시킨 것 역시 점차 거세지는 글로벌 경쟁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신사업 조직을 기존 조직에서 별도로 떼내 빠르게 육성하겠다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LG전자가 냉난방공조(HVAC)와 전기차 충전 등 ‘클린테크’ 관련 신사업을 책임질 ES(에코 솔루션) 사업본부를 신설한 것이 대표적이다. LG에너지솔루션도 배터리 제조를 넘어 구독 등 다양한 서비스까지 망라하는 신사업 ‘EaaS(에너지 서비스)’ ‘BaaS(배터리 서비스)’ 조직을 최고전략책임자(CSO) 산하에 각각 신설, 확대했다.

[박순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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