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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만났습니다]①"주식도 알고리즘 시대…사람이 절대 못 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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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로 서울대 교수 겸 옵투스 자산운용 대표 인터뷰

20년간 연구한 알고리즘의 논리 "알지 못하고 알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는 유용한 결과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 됐다"

6달 이기고, 4달 진다.."예측하지 말고 항상 시장에 속하라"

이데일리

문병로 서울대 교수 겸 옵투스자산운용 대표가 5일 오후 서울 관악구 관악로 서울대학교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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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컴퓨터가 주도하는 투자는 근본적으로 사람이 찾을 수 없는 전략을 사용하니 경쟁이 안 됩니다. 사람이 절대 알고리즘을 이길 수 없죠”

지난 5일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서울대 넓은 땅의 절반을 꼬불꼬불 돌아 옵투스 자산운용이 위치한 컴퓨터연구소에서 문병로 대표를 만났다. 그는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면서 알고리즘 매매전략을 추구하는 자산운용사까지 이끌고 있다. 4차산업시대 융복합을 제대로 발현하고 있는 셈이다.

알고리즘 연구만 20년째 해오고 있다면 이 알고리즘이 종목을 찾아내는 공통된 논리가 있을 법도 하다. 그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코스피 수익률을 6배나 이겼다면 말이다. 하지만 문 대표는 “알지 못하고 알 수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세상 가능한 모든 포트폴리오 전략이 우주 전체라면 사람이 평생 동안 도출할 수 있는 전략은 우리 눈 앞의 먼지 몇 톨 밖에 안 된다”며 “이해할 수 없는 유용한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가 됐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그는 알고리즘이 내놓는 포트폴리오에 개입하려 애쓰지 않는다. 시장은 늘 오르고 내리는데 열 달 평균 여섯 달은 (시장을) 이기고 넉 달은 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확률적 우위에 몸을 맡기고 시장의 횡포를 견디는 것’ 문 대표의 책 ‘메트릭 스튜디오’에 나오는 효율적 주식 투자의 정의다.

◇ 알고리즘의 목표는 ..“현 시장의 최적 종목 조합을 찾아라”

문 대표가 주식을 처음 만진 것은 1980년대 말 대기업에 다니던 시절, 우리사주를 통해서였다. 그것을 계기로 직접 투자도 하고 2000년부턴 주식 알고리즘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2005년까지 그 당시 연봉의 몇 배 가량 손실을 봤다. 그러다 2006~2007년 반환점이 생겼다. 그동안 손해 본 것을 만회하고도 몇 배의 수익을 냈다. 문 대표는 “‘드디어 우리 알고리즘이 수익을 내는 핵심적인 매커니즘을 잡았다’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옵투스는 주식과는 전혀 상관없는 최적화 전문회사였다. 인터넷 마케팅 최적화, 반도체 라인 공정 최적화 등 기업의 문제 해결 전문회사가 출발이다. 문 대표는 주식 성과를 보고 “혼자 묻히기 아깝다”며 2009년 사업의 방향을 틀었다.

2000년부터 나온 기업 재무제표, 경제지표, 거래량 등 수 백 가지 데이터를 알고리즘에 입력하고 새 데이터가 나올 때마다 업데이트 한다. 그러면 알고리즘이 자신의 블랙박스(인간의 두뇌나 알고리즘처럼 입력과 출력만 보이고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는 장치나 시스템) 안에서 최적의 종목을 추출, 포트폴리오를 내놓는다. 최적의 종목이란 ‘현 시점에 어떤 종목의 조합으로 시장에 들어 있는 게 가장 현명한가’에 대한 답이다.

데이터가 업데이트되면 짧게는 몇 개월 만에 포트폴리오를 교체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엔 1년이 넘게 포트폴리오를 유지하기도 한다. 알고리즘이 내놓는 포트폴리오는 무한대다. 그 중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되는 포트폴리오는 사람이 직접 선택한다. 평균 150~200개 종목에 투자한다. 삼성전자(005930)에 투자할 때보다 하지 않았을 때가 더 많았다. 바이오주(株)는 알고리즘 입장에서 별로 매력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문 대표는 “알고리즘의 논리를 사람이 추정하긴 어렵다. 만들어놓은 결과물(포트폴리오)을 보면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빅데이터가 얽혀서 아웃풋을 내는 것에 대해 옛날처럼 일차원적으로 설명하는 시대가 지났다”고 말했다. 알고리즘이 내는 이해할 수 없는 결과를 어떻게 믿고 투자할 수 있을까. 문 대표는 “시장의 장기적 데이터를 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시장을 크게 이긴다는 확신이 없으면 못 한다. 이는 단기적으론 시장을 언더퍼폼(underperform)할 수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알고리즘 투자 수익률은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 있었던 2011년 8~9월과 2017년 상반기에 코스피 수익률 대비로 크게 떨어졌으나 2009년 초 이후 누적 수익률을 고려하면 500%가량을 기록해 코스피(80% 가량)를 6배나 앞서 갔다. 그러나 문 대표는 “시장은 단기적으로 얼마든지 변덕을 부리기 때문에 우리가 원했던 수익의 반만 나와도 만족이라고 생각했다”며 “실제로 공부하고 기대했던 수익의 반도 나오지 않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시장 전망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금융위기 등은 아예 예측조차 하지 않는다. 그냥 당하고 견딘다. 알고리즘의 목표는 현 시장에 가장 최적화된 종목을 찾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시장에 속해 있어야 한다’는 게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문 대표는 “외국 구루(Guru, 권위자)들은 전체 기간의 2~7%(평균 5%) 남짓한 기간에 80%의 수익이 난다고들 한다. 짧은 기간에 결정적 수익을 내는데 시장을 계속 들락거리면 결정적 수익이 날 때 빠져 있을 수 있다. 장기 투자엔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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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로 서울대 교수 겸 옵투스자산운용 대표가 5일 오후 서울 관악구 관악로 서울대학교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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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라는 자체가 주식시장의 결격사유”

미국 등 해외에선 초단타(High Frequency Trading·HFT) 알고리즘을 중심으로 거래량의 80%가량이 알고리즘에 의해 움직인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증권거래세(0.25%) 때문인지 현물시장에선 알고리즘 비중은 추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히 미미하다. 그러나 문 대표는 “알고리즘 중심의 투자로 무게 중심이 옮겨갈 것이고 이미 추세가 잡혔다”며 “시간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왜 알고리즘 투자일까. 문 대표는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자체가 주식 시장의 결격 사유”라며 “제가 알고리즘을 좀 안다고 직접 투자해도 돈을 못 벌 것”이라고 밝혔다. 컴퓨터 주도 투자(통계·계산·분석은 물론이고 전략이나 판단까지 알고리즘에 맡기는 투자로 전략이나 판단은 사람이 하는 `컴퓨터 지원 투자`와 구분된다)는 근본적으로 사람이 찾을 수 없는 전략을 사용하니까 경쟁이 안 되는 투자 주체라는 게 문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개인투자자를 ‘공익투자자’라고 부른다. ‘내 한 몸 희생해 시장의 역동성을 키우는 투자자.’ 사람이 절대 알고리즘을 이길 수 없다는 얘기다. 그는 “자기 나름의 매커니즘을 깨우쳐서 변동성에도 확신을 갖고 버틸 수 있는 개인투자자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런 투자자는 1~2%밖에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알고리즘 시대에선 애널리스트도 고전할 수밖에 없다. 문 대표는 “애널리스트의 목표가 시장의 장기 전망이 돼야 하는데 단기적으로 보려는 성향이 강하다”며 “단기 전망은 시장의 변덕을 예측하는 것인데 그것은 가능하지 않다. 가장 어리석은 게 내년 1월에 코스피가 얼마로 갔다가 3월엔 얼마로 하락하는 등의 예측을 하는 것이다. 한 번 질러보고 100번 중에 한 번 맞으면 족집게 소리를 듣는다”고 꼬집었다.

◇ ‘韓 증시 전망 밝아’..“투자하기 좋은 시기 임박”

문 대표는 “미국, 일본 등의 증시에 비해 우리나라가 안 좋은데 오히려 이런 분위기가 주식 투자하기 좋은 시기가 임박했음을 시사한다”며 “어떤 나라의 증시가 영원히 소외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문 대표는 “최근 8년을 돌아보면 한국 시장의 침체는 과하다”며 “시장이 안 좋은 와중에도 돈을 벌 사람은 벌고 주식회사 대한민국 기업의 재무제표는 계속해서 살찌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올해 기업 이익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으나 기간을 늘려보면 기업 이익은 증가하고 있다”며 “일시적으로 디스카운트(Discount)가 있으면 가깝거나 먼 미래에 크게 도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쩌면 코스피가 한 해 50% 오르는 해가 조만간 올지 모른다”고 언급했다. 코스피 시장에 대한 전망일까. 문 대표는 “절대 전망은 하지 않는다”며 “주식시장은 전망이 아니라 대응의 영역”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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