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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홍콩 시위, 자유·존엄 위한 치열한 노력… 내 문학은 나약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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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문학 대표 작가 옌롄커, '세계 작가와의 대화' 참석차 내한

"중국서 태어난 건 작가로서 행운… 상상력 뛰어넘는 현실이 곳곳에"

중국 작가 옌롄커(61)는 질문 전부터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민감한 문제에 대해선 (답변하지 못하더라도) 양해 바란다"고 했지만, 홍콩 시위에 대한 질문부터 쏟아졌다. 옌롄커는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답했다. "홍콩의 민주화 시위는 문학에서 비평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섰습니다. 홍콩 시위는 인류의 자유와 존엄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 흔적이며 저는 그 어떠한 형태의 폭력도 반대합니다."

조선일보

옌롄커는 "어떤 이는 내 소설을 보고 '황당한 사실주의'라고 하는데, 저는 농담하듯 '그것이야말로 중국의 현실'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대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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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옌·위화와 함께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옌롄커가 대신문화재단 '세계 작가와의 대화'에 참석하기 위해 12일 한국을 찾았다. 문화대혁명 당시 군부대를 배경으로 남녀의 사랑과 욕망을 묘사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중국 마을 전체가 비위생적인 바늘을 써 에이즈에 집단 감염된 사건을 그린 '딩씨 마을의 꿈' 등이 대표작. 중국 사회가 감추려 하는 어두운 현실을 들춰낸 그의 작품은 대부분 금서로 지정됐다.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되는 옌롄커는 "나는 사실을 그대로 적었을 뿐 중국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해 비판한 적이 없다"면서 "시대의 현실에 직면해 목소리를 내는 지식인들에 비하면 내 문학은 나약하고 유약했다"고 했다.

중국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난 옌롄커는 1978년 군에 입대해 28년을 군인으로 살았다. 옌롄커는 "군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외국 소설을 읽었고, 소설에 단편·중편·장편이 있다는 사실도 그때 알게 됐다"면서 "군 생활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제 글은 없었을 것이고 문학의 관점으로 보면 내 운명에 감사한다"고 했다. 이야깃거리가 넘쳐나는 중국에서 태어난 것도 작가로서는 행운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중국에서 소설을 쓰면 특별한 영감이 필요하지 않다"면서 "휴대전화만 열어도 쓸거리가 쏟아진다"고 했다.

"얼마 전 교수와 지식인들이 토론하는 자리에서 어떤 이는 예수가 중국 동북 지방의 어느 현에서 태어났다고 말하고, 또 어떤 이는 영어가 중국 후난 지방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하더라고요. 중국의 현실은 작가의 상상력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옌롄커는 스스로를 "실패한 작가, 실패한 인간"이라 평했다. "아직 제 독창성과 창조력을 최대한 발휘한 작품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계속 실패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읽고 생각하며, 활기 넘치는 젊은 작가의 작품을 읽으려 한다"고 했다. 한국 젊은 작가의 소설에도 관심을 보였다. 최근 인상깊게 읽은 작품은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와 한강의 '채식주의자'. 그는 "두 작품 모두 가정이나 개인에게 집중한 글이었다"면서 "집단을 강조하며 가정도 집단이나 국가의 일부로 보는 중국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다"고 했다.

옌롄커는 '침묵과 한숨―내가 경험한 중국과 문학'을 주제로 13일 연세대(오후 2시)와 고려대(오후 5시)에서 강연할 예정이다.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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