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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左右 아울러 극한 대립 악순환 끊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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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민세상 수상자 선정] 학술 연구 부문·정윤재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납북 당시 '난 민족주의자'라며 김일성에게 당당히 도전한 민세… 민족협동전선 이끈 현실 정치인

조선일보

민세(民世) 안재홍(安在鴻·1891~1965·사진) 선생의 민족 통합 정신을 기리는 '민세상' 운영위원회(위원장 강지원 민세안재홍선생기념사업회장)는 지난달까지 시민사회단체·학술단체·지자체·대학 등을 대상으로 민세상 후보자를 추천받았다. 민세상 심사위원회는 강지원 위원장과 손봉호 나눔국민운동본부 대표, 양상훈 조선일보 주필(이상 사회 통합 부문),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 이진한 고려대 교수, 김기철 조선일보 전문기자(이상 학술 연구 부문)로 구성됐다. 심사위원회는 사회 통합 부문에 송경용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이사장을, 학술 연구 부문에 정윤재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를 수상자로 결정했다.

정윤재(65)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가 서울대 정치학과 대학원에 입학했던 1979년. '한국 정치론'을 가르치기 위해 강의실에 들어온 김학준(현 단국대 석좌교수) 교수는 "도서관에 가서 광복 전후 자료를 모두 찾아서 읽어 보라"고 주문했다. 스스로 현대사를 보는 눈을 키우라는 당부였다.

석사 1년 차였던 정 교수는 학교 도서관에서 옛 신문·잡지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자료 복사를 마치고 나니 가장 많은 분량의 글을 남긴 민족 지도자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민세 안재홍이었다. 정 교수는 "40년에 이르는 인연이 될 줄은 몰랐다"면서 "식민 사관의 묵은 때를 벗지 못하고 자기 비하와 냉소에 젖어 있던 시절에 문사철(文史哲)을 겸비한 민족 지도자를 찾았다는 흥분과 감격에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했다.

조선일보

정윤재 교수는 "9차례나 투옥된 안재홍 때문에 일본 관리도 '조선의 안씨들은 못마땅하다. 안중근·안창호·안재홍…' 이라고 푸념했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정 교수는 지난 40년간 안재홍을 비롯한 근현대 민족 지도자의 정치사상과 리더십 연구에 매진해서 "안재홍에 관한 최고 권위자"로 불린다. 그의 연구 덕분에 1965년 세상을 떠난 뒤 남북에서 모두 잊힌 민세가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민세가 납북 이후인 1956년 평양에서 한 공개 발언을 재평가한 것도 정 교수의 공으로 꼽힌다. 당시 민세는 스스로를 "나는 '지금부터는 공산주의자가 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품어보들 못했다"면서 "나는 진보적 민족주의자로서 여생을 생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김일성의 권위에 누구도 도전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전후 북한에서 공산주의와 거리를 두고 당당하게 민족주의를 밝힌 모습이야말로 민세의 기개(氣槪)를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민세는 일제강점기 9차례 투옥돼 7년 3개월 옥고를 치렀다. 정 교수는 "민세가 투옥과 출옥을 거듭하면서도 조선일보 사장·주필로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최초의 전국 규모 민족 협동 전선인 신간회를 이끌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협동 전선'이라고 하면 좌파가 주도하는 방식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정 교수는 "민세는 민족주의 세력이 주류가 되어 좌파 일부를 포용하는 좌우 합작을 이끈 현실 정치인이기도 했다"고 했다.

광복 직후 민세는 여운형과 함께 건국준비위원회를 만들었고, 1946년부터는 좌우 합작 운동에도 나섰다. 미 군정청 민정장관으로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초석을 놓은 것도 민세의 공으로 꼽힌다. 정 교수는 "소위 '중간파'라는 나약하고 왜소한 용어에 민세의 사상을 가둘 수는 없다. 민세는 서재필·이승만·이상재·안창호 등 자유주의적 민족주의라는 한국 정치사상의 본류(本流)를 이어간 정치 지도자로 재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민세의 정치 노선을 순수하고 올바르다는 의미에서 '순정(純正) 우익'이라고 불렀다.

정 교수는 "현실감각을 지닌 자유주의적 민족주의를 주창한 민세의 정신으로 되돌아갈 때 지금의 좌우 대립 악순환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심사평] 한국 최고의 '안재홍 연구자'

정윤재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민세 안재홍 선생의 정치사상과 리더십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한국 최고의 '안재홍 연구자'다. 안재홍 평전을 비롯해 40여 년간 민세의 국제적 민족주의론과 문화 건설론 등을 연구해서 학계의 재평가를 이끌었다. 광복 이후 주요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비교 심층 연구를 통해서 한국 정치 리더십 연구 분야를 개척한 원로 정치학자이기도 하다. /심사위원 신용하·이진한·김기철







[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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