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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만물상] 궤변의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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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00년 경 그리스에선 소피스트라고 하는 궤변론자들이 득세했다. 부유층 자제들에게 변론술을 가르치는 걸 생업으로 삼았다. "그리스 영웅 아킬레스와 거북이가 달리기 경주를 할 때, 거북이가 먼저 출발하면 아킬레스가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 아킬레스가 원래 거북이가 있던 자리에 갔을 땐, 거북이도 반드시 얼마간 더 앞으로 나아가 있기 때문이다" 식의 궤변으로 대중을 현혹했다.

▶궤변은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 애용하는 대중 선동 수단이다. 베네수엘라 차베스 전 대통령은 "코카콜라는 배럴당 79달러, 우유는 150달러인데, 석유는 이보다 훨씬 싸다"는 궤변을 앞세워 원유 감산 및 고유가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는 "자본주의 체제에선 할 수 없는 '빈곤과의 전쟁'을 내가 수행하겠다"면서 빈곤층 자녀에게 1인당 월 100달러씩 지급하는 현금 복지를 펼치다 경제를 거덜냈다. 베네수엘라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35%, 물가 상승률은 5만%에 이를 전망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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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부 좌파 경제학자가 정부가 마구 돈을 찍어내도 국가 부도 사태는 안 생긴다는 '현대 화폐 이론(Modern Monetary Theory·MMT)'을 들고나왔다. 정치인들이 혹할 만한 주장이지만 궤변에 불과하다. MMT 이론이 맞는다면 10여 년 전 액면 100조달러 초고액 화폐까지 마구 찍어낸 아프리카 짐바브웨는 경제가 잘 돌아가야 할 텐데, 실제는 정반대다. 미 연준 제롬 파월 의장은 MMT를 두고 "그냥 틀리는 이야기"라고 일축한다.

▶문 정부는 MMT 이론에 호감을 갖고 있는 듯하다. 엊그제 청와대 대변인은 "곳간에 있는 작물을 쌓아두기만 하면 썩어버린다. 어려울 때 쓰라고 곳간에 재정을 비축해 두는 것"이라는 황당한 궤변을 내놨다. 문 정부는 출범 2년 반 만에 과거 비축해 둔 재정을 다 털어먹고, 내년엔 적자 국채를 60조원이나 찍어내 미래 세대에게 천문학적 빚을 안길 판이다. 경제를 연구한 경력이 전무한 사람이 어이없는 논리를 방송에서 당당히 펴는 그 '용기'가 어디서 나오는지 의문이다. 이 정권 사람들은 경제, 안보 모두를 참 쉽게 본다.

▶문재인 대통령은 체코 총리한테는 "한국 원전은 40년간 단 한 건도 사고가 없었다"고 자랑하고는 국내에선 "원전은 안전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않다"고 탈원전을 밀어붙이고 있다. 보통 사람은 이렇게 하면 얼굴이 화끈거릴 것 같은데 안 그러는 모양이다. '곳간 궤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특히 총애한다고 한다.

[김홍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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