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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어떤 억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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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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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석우 변호사의 법률 이야기-125] 서울 변두리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A씨는 억울해 죽을 지경이다. 오랫동안 다니던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하며 받은 퇴직금으로 겨우 마련한 호프집이다. 꽤 오랫동안 적자를 면하지 못하다가 동네 사람들과 안면이 트면서 이제 제법 단골도 생기고 수익도 발생하던 참에 영업정지 3개월이라는 중한 제재를 받게 생겼다.

구청에서 받은 처분사전통지에는 조만간에 '영업정지 3개월' 처분이 될 것이라고 적혀 있다. 3개월 동안 호프집 문을 닫으라고 하니 A씨 눈앞이 캄캄하다.

식품위생법상 영업자 준수사항을 위반했다는 이유인데, 위반 내용에는 '청소년 주류 제공'이 2회에 걸쳐 있었다는 내용이 얄미울 정도로 선명하게 적혀 있다.

덩치 좋은 녀석들이 8명이나 우르르 몰려 와 몇 명은 신분증을 내밀며 술을 달라고 했고 나머지 녀석들은 휴대폰을 내밀며 저장된 신분증을 보여주며 당당히 요구한 일이 떠올랐다. 어딜 봐도 열아홉 살이 안 된 청소년으로 보이지도 않았고 하도 당당하고 천연덕스럽게 술을 달라고 하기에 실제 신분증과 휴대폰 속 신분증 사진만 확인한 상태에서 술을 내주게 됐다. 지금도 이들이 청소년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A씨다.

불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꼭 2주 후에 이번엔 7명이 몰려와 술을 달라고 한다. 지난번에 왔던 친구도 있었고 새로 보는 얼굴도 있었는데 이번에도 신분증을 요구하니 몇 명은 신분증을 보여주고 또 나머지는 휴대폰에 저장된 신분증 사진을 내민다. 스무 살이 넘은 것을 확인했지만 웬지 찜찜해서 메뉴판에 이름과 주소, 주민등록번호를 적어 보라고 했다. 거리낌 없이 스무 살이 넘는 생년월일을 적는 모습을 보고 술을 내줬다. 이런 정도라면 이들이 청소년이라고 누가 알 수 있었으랴? 그런데도 관할 경찰서에서는 A씨를 청소년보호법 위반이라고 몰아붙이고 관할 구청에서는 청소년 주류 제공이라는 이유로 영업정지 처분을 내릴 것이라 한다.

A씨는 이 같은 억울함을 구제받을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누구든지 청소년을 대상으로 주류와 같은 청소년유해약물 등을 판매해서는 안 된다. 주류를 판매하려는 자는 그 상대방의 나이 및 본인 여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청소년보호법이 엄히 정하고 있는 사항이다. 유해 환경을 접한 청소년이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하는 데 미치는 악영향이 매우 크므로 주류를 취급하는 관련 업종 종사자를 비롯한 기성세대들에게 청소년들을 유해 환경에서 보호할 의무를 부여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를 위반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여기서 자주 문제가 되는 게 주류 판매 대상이 되는 사람의 나이 및 본인 여부를 어떻게 확인하느냐는 것이다. 비록 사진이긴 하지만 신분증을 촬영한 영상으로 나이와 본인 여부를 확인하고 혹시 몰라서 주민등록번호까지 적어보라고 할 정도였다면 호프집 주인으로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닐까? A씨 말대로 상식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는데 벌금에 영업정지까지 매기는 것은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어쩌랴? 나이와 본인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에 대해 법이 분명하게 정하고 있었던 게다. A씨가 모르고 있었을 뿐이었고 법의 무지는 용서받지 못하는 법.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은 주류를 판매하는 경우에 원칙적으로 '대면을 통한 신분증 확인이나 팩스 또는 우편으로 수신한 신분증 사본 확인'에 의할 것을 요구하고, 여성가족부에서 펴낸 '청소년 보호업무 관련 사항 모음'에서는 '청소년 대상 술·담배 판매와 관련해 신분증 확인 시에 휴대폰으로 찍힌 사진으로 신분증을 제출할 시에는 이는 신분증으로 인정하지 아니함'이라고 정해 놓고 있었던 것이다.

A씨는 현재 청소년보호법 위반으로 검찰에서 약식명령이 청구되어 조만간 법원의 약식명령장이 나올 예정이다. 구청의 영업정지 3개월 처분을 막으려면 약식명령에 정식재판을 청구해서 최소한 선고유예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청소년 주류 판매로 인한 청소년보호법 위반 사안에서 선고유예를 받으려면 대부분 청소년이 신분증을 위조하거나 변조하여 나이를 적극적으로 속이거나 업주를 강박하는 방법으로 위반행위의 원인을 제공한 경우 등 제한적인 경우에만 인정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사유로 선고유예를 받아야만 영업정지 처분이라는 구청의 제재를 면제받을 수 있게 된다.

이래저래 퇴직금을 털어 넣어 이제 겨우 숨을 돌릴 만큼 호프집을 궤도에 올려놓았던 A씨로서는 잠을 이룰 수 없게 됐다. '법의 무지는 용서받지 못한다'는 말이 야속할 따름이다.

[마석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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