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6 (월)

[사설] 횡령·배임 이사 해임 요구가 ‘사회주의’라는 궤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이 13일 공청회를 열어 ‘국민연금기금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과 ‘경영 참여 목적의 주주권 행사 지침안’을 공개했다. ‘주주권 행사 지침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경영진의 횡령·배임·사익편취 등 불법행위 우려로 기업가치를 훼손한 기업, 경영 실적보다 임원 보수를 과도하게 책정한 기업, 배당을 지나치게 적게 하는 기업 등에 대해서는 국민연금이 주주총회에서 정관 변경, 사외이사 선임, 이사 해임 등을 요구하도록 한 것이다. 또 국민연금이 지속적으로 이사·감사 선임을 반대했는데도 이를 무시한 기업도 대상이 된다. 지난해 7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원칙) 도입이 의결권 행사의 길을 본격적으로 열었다면 이번 방안은 이른바 ‘문제 기업’에 대해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강화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에선 국민연금이 투자 대상을 선택할 때 재무적 가치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도 고려하도록 했다. 수익성 요소에 더해 환경·사회·지배구조 등의 요소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라는 얘기다. 책임투자는 투자 리스크를 줄여 장기 수익률 제고에 기여해 외국의 연기금들은 이미 적용하고 있다.

국민연금기금 운영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공청회에서 나온 의견을 종합해 이달 말 최종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재벌 총수 등 대기업 경영진의 불법·비리가 끊이지 않는 현실에 비춰볼 때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강화는 늦은 감마저 있다. 경영진의 잘못으로 국민의 소중한 노후자금에 피해가 발생하는데도 국민연금이 팔짱을 끼고 있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강화는 ‘예방 효과’도 클 것으로 기대된다. 기업평가사이트인 시이오(CEO)스코어 집계를 보면, 10월 말 현재 국민연금이 지분 10% 이상을 보유한 기업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98곳에 이른다. 주주권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기업들이 경각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만으로도 적지 않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주총 거수기’라는 오명을 듣던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10% 안팎에 머물렀던 ‘반대 의결권’ 행사 비율이 올해는 20% 선까지 올라갔다. 지난 3월 대한항공 주총에서 고 조양호 회장의 이사 연임 안건이 부결된 게 대표적인 예다.

또 국민연금은 주주권 행사에 앞서 문제 기업과 대화를 하기로 했다. 충분히 대화를 했는데도 개선이 없는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경영 참여 목적의 주주권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보수언론과 일부 경제단체들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경영권 침해” “연금사회주의”라고 공격한다. 불법·비리를 저지른 경영진에게 책임을 묻는 것을 두고 사회주의라고 하니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힐 노릇이다. 경영권을 절대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성역으로 여기는 시대착오적 기업관이 아닐 수 없다.

다만 국민연금도 권한이 커지는 만큼 의사결정 과정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노력을 더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기금운용위원장을 보건복지부 장관이 계속 맡는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국민연금의 독립성 강화는 주주권 행사의 정당성을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 관련 기사 : 국민연금,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 ‘투명화’

▶ 관련 기사 : 국민연금 ‘주총 거수기’ 벗을까…‘반대’ 의결권 행사 20% 넘어

▶동영상 뉴스 ‘영상+’
▶한겨레 정기구독▶[생방송] 한겨레 라이브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