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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정동일의혁신리더십] 경기 어려울수록 핵심 인재 보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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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주요기업들 일제히 비상경영 돌입 / 위기 극복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

세계일보

며칠 전 신문에서 ‘한국의 30대 기업이 생존을 위해 희망퇴직과 경비절감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은 주말과 주중을 가리지 않고 긴급 경영전략회의를 열며 비상경영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포스코도 올해 일반 경비를 30% 절감하는 ‘코스트 이노베이션 2020’을 추진하고 있다. LG 구광모 회장도 최고경영진과 마라톤 워크숍을 열고 생존을 위해 사업방식과 체질변화를 주문했다고 한다.

창사 이래 가장 큰 위기를 겪고 있는 LG디스플레이는 이미 대표이사가 교체됐고 임원의 25%가 감원된 상태에서 5년차 이상 사무직까지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롯데그룹도 주요 임원 150여명이 참석한 경영간담회에서 비상경영체제 전환을 선언하고 강도 높은 비용절감과 투자계획 재검토에 들어갔다. 국내 3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56%에 해당하는 17곳이 경영환경의 악화에 따라 중·장기 경영전략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며 일제히 비상경영에 돌입했다고 한다.

경기가 침체되고 위기가 찾아오면 기업은 지속적 성장과 생존을 위해 치열한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위기는 기업에 고통스럽지만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면역주사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리더들이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한 과정에서 회사의 분위기가 악화하고 직원이 불안해하며 이제까지 공들여 왔던 조직의 핵심가치가 무너지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스마트한 리더는 경제상황이 어려워져도 조직문화와 핵심가치, 그리고 인재를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동시에 기울인다.

금융위기가 몰아치던 2009년 미국의 타워스페린이란 컨설팅회사가 보고서를 발간했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앞으로 18개월 동안 어떤 활동을 할 예정이냐는 질문에, 기업이 이야기한 첫 번째 항목이 ‘상당한 규모의 원가 절감’(74%)이었고, 두 번째가 ‘적절한 규모의 인원 구조조정’(64%)이었다. 하지만 같은 보고서에 경기침체가 찾아오면 이직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직원으로는 첫 번째가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역량을 가진 직원’(55%), 그리고 두 번째가 ‘고성과자’(38%)로 나타났다. 어떤 의미일까. 경기침체를 경험하는 기업은 원가절감과 구조조정에 초점을 맞춰 위기를 극복하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기업에서 이직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직원은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기업이 가장 필요로 하는 핵심인재라는 것이다.

몇년 전 국내 어느 그룹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1년차 신입직원에게까지 퇴직서를 받으려 해서 구설에 오른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많은 사람이 분노한 이유는 이 그룹이 다양한 광고를 통해 ‘사람이 전부다’란 자신들의 핵심가치를 강조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조직이 어려움에 부닥치자 사람부터 자르면서 어떻게 ‘사람이 전부다’란 가치를 떠들어댈 수 있느냐는 비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요즘 경제가 어렵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업은 당연히 다양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핵심가치와 조직문화, 그리고 인재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소중한 것에 대한 진정성은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동일 연세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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