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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글로벌 포커스] 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은 왜 난항에 빠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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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덕과 막무가내의 트럼프 협상

한국, 예측불가 상황에 대비해야

중앙일보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석좌교수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정책에는 당혹스러운 요소가 많다. 동맹국에 대한 가차 없는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도 그중 하나다.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최근 몇 주간 이어진 미국 고위급 관료들의 방한은 한국 정부를 압박하려는 움직임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한국에 요구한 50억 달러가 빚을 부작용을 염려하고 있다.

물론 한국이 성장한 만큼 상호 책임을 재점검하고 협력 확대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타당하다. 또 그동안 한국이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 공식적으로 명시된 범위 안에서만 비용을 감당해온 것도 적절하지 않다. 미국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 방위군 배치와 관련한 군사 훈련 비용을 비롯해 필요 이상의 방위비를 지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합리적 이유에도 불구하고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SMA)이 답보 상태에 빠진 데는 트럼프 대통령의 일관성 없는 외교정책 영향이 크다. 지금까지 전개해온 트럼프식 외교는 다음과 같다.

첫째, 대선 후보 시절 지지자들을 선동하기 위해 과장된 어조로 미국의 동맹국들이 턱없이 적은 방위비를 분담하고 있으며 미국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지지자들에게 미국은 동맹이 필요하지 않다는 인상을 심어줬다.

둘째, 당선 후 한국으로부터 50억 달러에 육박하는 분담금을 받아내면 방위비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과장된 약속을 반복했다. 50억 달러의 근거가 되는 공식적인 분석 자료는 아직 발표된 바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이를 반복해 대중의 갈채를 받았지만 50억 달러가 어떤 세부 항목에 근거한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셋째,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협상력’(leverage)을 높이는 전략을 제시했다. 방위비 분담금 연례 협상도 여기에 포함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통해 미국이 동맹국들과의 관계에서 정치적 긴장을 주도하는 위치를 점했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한국을 예로 들면 내년 4월 총선에서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하고 싶어하는 여야에 다소 영향을 주었을 뿐이다.

넷째, 트럼프 정부는 방위비 분담금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큰 그림을 놓쳐 의도하지 않은 여러 결과를 낳았다. 가령 북한과의 협상은 공중분해가 됐다. 한·일 관계의 중요성은 잊힌 지 오래다. 성공적인 인도·태평양 전략을 위해 한국에 협조 요청을 했지만 미지근하고 형식적인 답만 받았다. 모든 주요 안건이 방위비 분담금에 밀려나고 만 셈이다.

마지막 단계로, 정치·외교 분야 전문가들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사방에서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과도한 요구를 빌미로 한국의 야당 의원들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미 동맹이 위기에 처했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 국민들이 미국으로부터 인정을 못 받고 괴롭힘을 당한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과연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전략이 어떤 이점을 창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미국은 전반적으로 한·미 동맹을 굳건하게 지지하는 편이다. 여야 할 것 없이 중국이나 러시아가 일으킬 변수에 대응하려면 동맹국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깊이 인지하고 있다. 방한한 역대 미 국방부 장관들이 해온 발언처럼 한·미 동맹의 가치는 결코 소홀히 다뤄져서는 안 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계속되는 한 한국은 미국의 변덕스러운 외교정책이 빚어내는 예측불가능한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미국은 무리한 분담금 요구를 철회해야 한다. 혹시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적정 수준의 분담금 인상을 전략적 승리로 포장할 용의가 있다면 문재인 정부는 한·미 양측이 모두 만족할 만한 협상을 끌어낼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면 양국 관계는 더욱 소원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동맹국들은 아마 미 대선이 빨리 다가오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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