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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제약사가 양말 디자이너를 만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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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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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양말을 보세요. 다소 헐렁한 듯 보여도 피부에 착 달라붙어 쉽게 흘러내리지 않아요. 발 보호가 중요한 당뇨병 환자들은 이처럼 편한 양말을 꼭 신어야 해요."

지난주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양말 전문 브랜드 '아이헤이트먼데이' 쇼룸을 찾은 제약사 한독의 허은희 기업사회공헌(CSR) 상무(45)와 홍정미 아이헤이트먼데이 대표(34)가 당뇨병 환자용 양말을 집어든 채 나눈 대화다.

패션양말을 전문으로 생산해 온 아이헤이트먼데이는 올 초 한독으로부터 제안 하나를 받았다. 당뇨병 환자를 위한 전용 양말을 제작해 달라는 것. 그리고 한독은 전문 의료진(김철식 한림대성심병원 내분비내과 교수)의 자문을 거친 뒤 아이헤이트먼데이와 지난 10개월간 협업을 통해 당뇨병 환자용 '당당발걸음 양말'을 탄생시켰다.

당뇨병 환자는 혈액순환이 현저하게 떨어지기 때문에 발에 상처가 나면 피가 잘 멈추지 않는다. 심하면 상처가 궤양으로 악화돼 최악의 경우 발을 잘라내야 할 정도로 무서운 합병증 위험에 노출돼 있다. 이 같은 당뇨 합병증으로 족부가 손상되는 일명 '당뇨발'은 당뇨병 환자 4명 중 1명꼴로 나타날 만큼 당뇨병 환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합병증 가운데 하나다. 허 상무는 "당뇨 합병증 가운데 가장 심각하고 치료 비용도 많이 드는 질환이 바로 당뇨발"이라고 강조했다.

기존에도 일부 당뇨양말이 생산됐지만 한독 의뢰를 받은 아이헤이트먼데이는 기능성을 강화하는 한편 색상 등 패션에도 신경 썼다. 혈액순환이 나쁜 당뇨병 환자를 위해 발에 가해지는 압박을 최소화하면서도 쉽게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홍 대표는 "기존 당뇨양말은 양말목 끝부분에 고무처럼 늘어나는 성질의 스판사(絲)를 많이 썼지만 우리는 그보다 더 얇고 신축성이 좋은 '나일론사'를 썼다"며 "양말을 신고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양말목이 꼬불꼬불 흘러내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당뇨병 환자는 특히 발뒤꿈치 부분이 매우 건조해 조금만 긁혀도 쉽게 상처가 생기고 피가 나는 경우가 많다. 허 상무는 "양말목 부분이 자주 흘러내리면 그만큼 불편해 당뇨병 환자는 실내에서 양말을 벗어버리곤 한다"며 "이러면 발에 상처가 생길 확률이 높아져 위험해질 수 있지만 이번에 개발한 당뇨양말은 잘 흘러내리지 않는 게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또 기존 당뇨양말은 회색이나 검은색 등 단색 위주인 반면 양사가 개발한 당뇨양말은 뒤꿈치와 발가락 부분에 별도로 밝은 색상을 가미했다. 홍 대표는 "당뇨병 환자는 발 상처를 잘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피가 나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피가 나면 곧장 양말에 드러나게끔 하기 위해 상처가 자주 생기는 뒤꿈치와 발가락에 밝은 포인트 색상을 배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재질 두께를 일정하게 만들어 여름·겨울 구분 없이 사계절 신을 수 있도록 했다.

한독은 당당발걸음 양말이 한 켤레 팔릴 때마다 한 켤레씩 별도로 구매해 당뇨병 환자에게 기부할 계획이다. 당당발걸음 양말은 크라우드펀딩 온라인 몰 '와디즈'를 통해 판매하는데 다음달 1일까지 500세트(한 세트당 네 켤레)만 한정 판매된다. 한 세트 가격은 1만7000원으로 켤레당 4250원이다.

와디즈는 크라우드펀딩 형식으로 소비자가 제품 광고를 보고 값을 미리 치르면 이에 맞춰 생산·공급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홍 대표는 "젊은 소비자가 많이 찾는 와디즈에서만 이번 제품을 팔기로 한 건 어두운 당뇨병 이미지를 좀 더 밝고 긍정적으로 극복해 보고자 하는 취지가 컸다"며 "실제로 부모님을 위해 이번 양말을 주문하는 20·30대 소비자가 많다"고 말했다.

와디즈 특성상 장기간 판매가 어려워 이번에는 500세트 한정 판매를 결정했지만 한독은 소비자 호응도가 좋으면 2차 판매에 나설 수 있다는 방침이다. 허 상무는 "올해부터 매년 세계 당뇨병의 날(11월 14일)이 포함된 11월에만 이번 양말 판매·기부 행사를 하려고 했지만 소비자 반응이 좋다면 내년 11월이 오기 전에 후속 판매할 계획도 있다"고 전했다.

[서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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