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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깎겠다던 야당도 가세, 예산 10조 더 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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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세수 줄어도 513조 수퍼예산… 국회상임위 12곳중 11곳 되레 증액

지역 건설사업·현금복지 등 확대, 총선 앞두고 여야없이 선심 예산

정부가 이미 사상 최고액으로 잡아놓은 내년도 예산안이 국회 심사 과정에서 깎이기는커녕 10조원 이상 불어나고 있다. 513조5000억원 규모의 정부 예산안에 대해 '재정 중독'이라고 비판하던 자유한국당 등 야당 의원들이 실제 예산 심사 과정에서는 자신과 관련된 지역·민원 예산 부풀리기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내년 국세 수입이 올해보다 2조8000억원 줄어든 292조원대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예산 늘리기가 계속되면 국가 재정이 급속도로 악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경기 부양을 위해 예산 규모를 원안보다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한국당은 지난 10일 '예산 심사에서 14조5000억원을 깎아 500조원 이하로 줄이겠다'고 했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난 17일 국회 상임위원회 17곳 중 12곳이 정부 예산안 예비 심사를 마친 결과 정부 원안보다 예산 총액이 오히려 10조5950억원 늘었다. 기획재정위원회만 434억원을 삭감했을 뿐, 나머지 11개 상임위가 예산 규모를 수조원에서 수백억원씩 늘렸다. 실제 심사 과정에서 한국당을 포함한 야당 의원들이 총선용 현금 지원 사업과 지역 SOC(사회간접자본) 사업 예산을 늘리라는 요구를 쏟아냈다고 한다. 여야가 선거용 예산 늘리기에 '암묵적인 담합'을 하면서 감액은커녕 역대 최대 규모의 증액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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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농림축산식품부 등의 예산 규모를 3조4374억원이나 늘렸다. 생산량과 무관하게 농가 소득을 보전하는 방식의 '공익형 직불제'를 도입한다며 관련 예산을 8477억원 늘렸고, 어촌 현대화 사업인 '어촌 뉴딜 300' 사업 지역을 늘린다며 899억원을 추가했다.

여야 의원들은 특히 지역구 민심 잡기에 도움이 되는 지역 SOC 예산을 대거 늘렸다. 국토교통위원회는 고속도로·국도 건설에 7312억원, 철도 건설에 2120억원, 국가 하천 정비에 706억원 등 총 2조3192억원을 늘렸다. 환경노동위원회도 환경부와 고용노동부 등의 예산을 1조3860억원 늘렸는데, 특히 정부가 6302억원을 들여 하겠다고 한 전국 하수관로 정비 사업을 1조1006억원 규모로 키웠다.

현금을 직접 뿌리는 예산도 여야가 합심해 늘렸다. 교육위원회는 교육부 등의 예산을 1조3257억원 늘렸다. 누리과정 지원 단가를 5만원 올리는 데 6174억원을 더 들이기로 했다. 행정안전위원회에서는 이·통장 수당 예산이 1320억원 늘었다. 지난 6월 정부와 여당은 월 20만원인 이·통장 수당을 내년부터 월 30만원으로 인상하기로 했다. 그러자 야당은 "총선을 염두에 둔 선심성 현금 살포"라고 비판했었다. 하지만 막상 예산 심사 과정에선 한국당 의원들의 요구로 인상 폭이 월 40만원으로 커졌다. 민주당 의원은 "각 상임위가 예결위 심사에서 예산이 깎일 것을 감안해 '일단 늘리고 보자'는 식으로 예산 규모를 부풀리고 있다"고 했다. 야당이 말로는 삭감을 외치면서 뒤에서는 자기 예산 늘리기에만 혈안인 것이다.

반면 예산 삭감은 민주당의 반대로 대부분 제동이 걸리고 있다. 국회 예결위의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예산소위)는 지난 11일부터 각 상임위에서 넘어오는 예산안에 대해 감액 심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15일까지 예산소위가 감액하기로 결정한 예산은 1조원이 채 되지 않는다. 야당이 제기한 감액 의견 가운데 남북 경협 기반 융자 사업(2520억원), 중소기업 전문 은행 출자(2400억원), 소재·부품·장비 산업 지원 펀드 조성(1840억원) 등 규모가 큰 것은 모두 민주당 의원들의 반대로 보류됐다. 이 사업들은 추후 여야의 주고받기식 협상 테이블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민주당이 절대 깎을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대규모 삭감은 어려울 전망이다.

[김경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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