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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김용균이 있었다]하루에 한 명 떨어져 죽고, 사흘에 한 명 끼어서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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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사고’ 전수 조사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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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흔한 산업재해인 추락사

안전장치 갖추지 못하거나

작업발판 설치 안된 곳에서

불안하게 작업하다 떨어져


제대로 멈추지 않은 기계에

끼임 사고로 사망도 흔해

사고 원인, 개인 부주의보다

감시 소홀 인한 경우 많아


인천의 한 기계식 주차설비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스물두 살 김호민씨(가명)는 19m 높이에 올라 철골 구조물을 콘크리트벽에 고정하고 있었다. 밟고 선 것은 폭 13㎝의 팰릿 거치대뿐. 발조차 완전히 디딜 수 없이 좁아 뒤꿈치가 툭 튀어나왔다. 발판 이외에는 몸을 지지할 아무런 장치가 없었다. 안전대는 착용하고 있었지만 벨트에 달린 고리를 걸 만한 설비는 없었다. 그는 볼트를 조이기 위해 몸을 움직이다가 아차 하는 순간 지하 2층 바닥으로 떨어져 사망했다.

김씨가 사고를 당하고 나흘 뒤인 지난해 4월8일, 서울에서 또 한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 한 건물 신축 현장에서 일하던 박우재씨(59·가명)는 드라이 에어리어(지하층 외벽 바깥쪽으로 채광과 환기를 위해 천장을 뚫어놓은 구멍) 근처에서 자재를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너비 2.3m에 폭 1.9m의 거대한 구멍이 4개나 이어져 있었고 그 아래에는 22m 깊이의 지하층 바닥이 보였다. 오금이 저릴 만한 아찔한 높이였지만 몸을 지켜줄 안전대는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구멍 주변의 난간도 해체된 상태였다. 허리를 숙여 자재를 회수하려는 순간 박씨는 구멍으로 빠졌다. 그 후 일주일 동안 또 다른 곳에서 7명의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했다.

2016년부터 올해 9월 말까지 3년9개월간 하루 평균 2.47명의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사고로 사망했다. 그중에서도 추락 사고는 하루에 한 번꼴(0.96일)로 발생했다. 왜 이렇게 많은 노동자들이 죽어야 했을까. 지난해부터 올해 9월 말까지 발생한 사고에 대해 건건마다 작성된 재해조사 의견서를 분석했다.

노동자들은 닷새마다 한 번꼴(4.45일)로 김씨처럼 안전대, 안전난간, 추락방호망 등 안전장치도 없는 곳에서 어떤 안전장비도 갖추지 못한 채 높은 곳에 올라갔다 떨어져 사망했다. 안전한 작업발판을 설치하지 않거나 사다리 위에서 불안하게 작업을 하다 떨어져 죽은 노동자도 일주일에 한 번꼴(6.01일)로 나왔다. 또 열흘에 한 번꼴(9.37일)로 박씨처럼 보호장치가 돼 있지 않은 뚫린 구멍(개구부)으로 추락해 사망했고, 보름에 한 번꼴(16.33일)로 지붕 위 작업 도중 1㎜ 안팎의 얇은 선라이트(채광을 위한 투명한 지붕 패널)나 슬레이트를 밟았다가 부서지는 바람에 떨어졌다.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5~6m 위의 높은 철골 위에서 맨몸으로 이동을 하고 용접을 하고 나사를 조이다가 사망한 사고도 흔했다. 그들이 디디고 설 수 있었던 유일한 지지대는 폭 15~20㎝의 철골뿐이었다. 외벽 청소를 하거나 마감공사를 할 때 쓰이는 달비계(로프로 고정된 작업대) 이용 작업 중 사망 사고는 별도로 구명줄을 달아 안전을 확보하지 않고 줄 하나에 노동자의 생명을 내맡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게차 포크에 끼운 팰릿에 탑승해 2~3m 높이에 올라가 작업하다 떨어진 경우도 많았다.

추락 사고 다음으로 많이 발생한 것은 끼임 사고다. 2016년부터 올해 9월까지 사흘에 한 번꼴(2.85일)로 발생했다. 지난해 3월 전남의 한 제조업체에서 컨베이어 벨트 청소작업을 하던 강지우씨(31·가명)는 산업용 로봇의 팔에 맞아 사망했다. 로봇은 강씨를 포장해야 할 제품으로 인식했다. 사람이 로봇 가까이 접근하면 자동으로 멈추는 안전장치가 있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재해조사 의견서를 통해 구체적 원인을 살펴보니 강씨와 비슷하게 기계를 멈추지 않고 정비나 확인 작업을 하거나, 안전장치 불량·강제해제, 순간정지 장치 미비로 발생한 사고가 155건에 달했다. 끼임의 위험이 있는 부분에 별다른 보호 조치를 하지 않은 경우도 30건이 넘었다. 다른 작업자가 안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기계를 작동시켜 사망에 이르게 한 사고도 많았다.

물체에 맞음, 깔림·뒤집힘, 부딪힘 사고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지난 1년여의 사고 원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닷새마다 한 번꼴로 건설·하역용 차량에 의한 사고(5.35일), 제대로 적재·고정되지 않아 떨어지는 물체에 깔리는 사고(5.4일)가 일어났다. 정격 하중의 5배가 넘는 중량물을 고정하거나 인양능력이 1t에 불과한 크레인으로 2t 분량을 끌어올리다 사고가 난 경우도 있었다. 땅을 파고 들어가 작업 중 굴착면이 붕괴돼 매몰되는 사고도 한 달에 한 번꼴(26.54일)로 발생했다. 기울기를 주지 않고 굴착면을 거의 수직으로 파거나 붕괴 방지조치 없이 작업하다 일어난 사고들이었다.

이러한 사고들의 원인을 개인의 부주의나 안전불감증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 주요 사고 원인을 봐도 단독으로 작업하거나 감시 소홀로 발생한 사고가 220건에 달했다. 설계·작업 기준을 미준수한 불량한 방법을 사용한 경우는 97건, 안전한 작업통로나 작업공간을 확보하지 않은 채 작업한 경우도 63건이었다. 사전 사고 방지 대책이라고 할 수 있는 작업계획서를 작성하지 않거나 사전 위험평가를 실시하지 않은 경우는 442건, 안전교육을 실시하지 않은 경우는 93건이었다.

지난해 1월 충북에서 작업자가 승강기에 깔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화물용 승강기 밑에서 작업할 때는 운반구를 움직이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어이없게도 승강기 자체의 프레임을 운반구의 지지대로 착각해 이를 고정한 뒤 작업한 것이다. 밤샘 야근을 거의 끝마쳐 가던 작업자는 이튿날 오전 7시 집중력이 떨어진 상태였지만 주간조에 업무를 인계하지 못했다. 생산 차질을 우려해 작업을 해야 했던 것이다. 의견서는 “작업자의 착오 요인을 고려하지 않고 생산 중심의 효율과 편의”에 따라 작업이 긴급하게 진행됐다면서 “안전작업에 필요한 조건들을 고려하지 않고 야간근무조에 의해 무계획적으로 수행되는 것이 방치됐다”고 지적했다. 효율과 비용 절감이라는 구호 속에 노동자의 안전이 뒷전으로 밀렸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추락사 절반 부르는 높이 5m 이하의 ‘무방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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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서울의 한 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강수덕씨(63·가명)는 사다리 위에 올라가 배관 연결 작업을 하던 중 뒤로 넘어져 사망했다. 강씨가 딛고 서 있던 사다리 발판의 높이는 60㎝에 불과했다.

흔히 추락 사고라 하면 수십m 높이를 상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가장 많이 떨어진 높이는 3m 이상 4m 미만이었고, 0~5m 사이의 높이에서 발생한 추락사가 전체의 절반 가까이(43.3%)를 차지했다. 최근 3년여간 발생한 3365건의 사망 사고 중 절반 정도(44.1%)가 추락 사고임을 감안하면 주의를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사다리 사용 추락 사망 사고

지난 1년9개월간 36건 발생

불과 60㎝에서 일어나기도

통념과 달리 숙련노동자들이

사망 노동자 절반 이상 차지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서

전체 사고의 87.2% 발생


강태선 세명대 교수(보건안전공학)는 “낮은 높이 추락 사고에서 A형 사다리 사용도 주요 원인으로 보인다”며 “연구자들은 알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그 높이에서 떨어지면 죽을 수도 있다고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작업한다”고 말했다. 실제 사다리를 사용한 추락 사망 사고는 지난 1년9개월간 36건 발생했다.

지난해부터 올해 9월까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작성한 재해조사 의견서 가운데 사망자가 발생한 1305건을 분석한 결과, 통념과 달리 사고는 숙련 노동자에게서 더 많이 발생했다. 숙련도를 확인할 수 있는 사망 노동자 654명 중 절반 이상인 334명(55.8%)이 경력 10년 이상인 숙련도 ‘고급’ 노동자였다.

숙련 노동자 사고가 많다는 것은 사망 노동자의 연령대가 높다는 점과도 겹친다. 사고의 66.6%는 50대 이상 노동자에게서 발생했다. 20~30대 사망 노동자 4명 중 1명(24.1%)은 이주노동자였다. 위험도가 높은 일자리에 고령층과 이주노동자들이 몰린 것으로 보인다.

업체 규모별로는 노동자 50인 미만의 사업장에서 발생한 사고가 전체의 87.2%를 차지했다. 5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으로 한정하면 전체의 31.0%였다.

2016년부터 올해 9월까지 사망 사고의 21.7%는 주말, 공휴일에 발생했다. 전국건설노조 이승현 노동안전국장은 “건설 현장은 주휴수당이 없고 일만 있으면 휴일에도 나가야 하다 보니 충분히 쉬지 못한 채 계속 일하게 돼 금·토·일에 사고가 많다”고 말했다.

원청 기준으로 사망 사고를 살펴보면 현대자동차그룹이 32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대림그룹(31건), 포스코그룹(27건), 대우건설(26건) 등의 순이었다.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사고가 많은 탓에 건설업체를 계열사로 둔 기업이 상위를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지역별로는 경기 화성시가 87건으로 가장 많았고 경남 창원시(61건), 인천 서구(61건), 경남 김해(52건), 충북 청주(52건) 등이 뒤를 이었다. 인구 1만명당 사고 수는 충북 단양(4.02명), 경북 고령(4명), 충북 음성(3.89명) 순으로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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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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