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2 (목)

전편 ‘하녀’와 이야기는 일치하지만…더 집요하고 강력한 ‘명자’로 귀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CJ 문화재단 공동기획]

(98)<화녀>

감독 김기영(1971)


한겨레

한겨레

평생 몇편을 제외한 대부분의 작품을 ‘여자’를 그리는 데 바친 감독이 있다. 바로 한국 컬트영화의 제왕, 김기영이다. <하녀>(1960)로 본격화되는 그의 ‘여성 유니버스’는 <화녀> <충녀> 등 각기 다른 제목으로 이어져오다가, 그가 영화화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작품 <악녀>로 막을 내렸다. 이들 영화는 제목과 등장인물, 배경 등이 상이함에도 궁극적으로는 여성의 욕망 질주를 중심으로 한 변주품들이라 할 수 있다. <하녀>가 이 김기영식 유니버스의 판형이라면 1971년 작품 <화녀>는 증보 편에 가깝다. 전편 <하녀>에서 이름조차 갖지 못했던 무명씨 ‘하녀’는 <화녀>에서 훨씬 더 집요하고 강력한 ‘명자’로 귀환한다.

시골 처녀 명자(윤여정)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 서울로 향하고 결국 양계장을 운영하는 정숙(전계현)의 식모로 들어가게 된다. 정숙의 남편 동식(남궁원)은 작곡가로 집안의 생계는 정숙이 꾸려나간다. 출산을 앞둔 정숙이 친정에 간 사이, 동식은 취한 상태로 명자를 범한다. 동식의 아이를 갖게 된 명자는 집안의 주인으로 군림하고자 하고, 정숙은 명자를 꾀어내 낙태를 시킨다. 아이를 잃은 명자는 동식과 정숙에게 복수를 한다.

이야기는 전편 하녀와 거의 일치하지만 스케일과 서스펜스, 그리고 인물의 묘사 등 많은 면에서 확장, 강화되었다. <하녀>의 상징, 2층 양옥집은 <화녀>에서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중산층의 공간으로, 정숙과 동식의 직업 역시 각각 바느질꾼과 방직공장의 음악 선생에서 양계장 사장과 작곡가로 진화한 것이다. 바뀌지 않은 것은 유일하게 하녀뿐이다. 하녀는 여전히 가정을 파괴하는 성적, 경제적, 문화적 위협을 내재한다. 그럼에도 그녀의 전근대성이 상징하는 본능과 야만, 그리고 정제되지 않은 욕망은 김기영이 만들어내는 서스펜스의 중추이기도 하다. 시대가 진화해도 원시의 하녀는 문명을 비집고 귀환한다. 그것은 줄거나 세련돼질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기도, 저항할 수 없는 향수이기도 하다.

김효정/영화평론가

※한겨레·CJ 문화재단 공동기획

▶페북에서 한겨레와 만나요~
▶신문 보는 당신은 핵인싸!▶7분이면 뉴스 끝! 7분컷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