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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 (토)

이슈 유럽연합과 나토

트럼프, 나토와 방위비 협상 승리...韓 협상에 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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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미국)를 대표하러, 미국인을 위해 열심히 싸우러 유럽으로 간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참석차 영국으로 떠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떠나기 전 자신의 트위터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유럽을 직접 찾는 이유가 ‘방위비 증액 압박’이라는 점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나토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에 결국 ‘운영비’에 해당하는 일부 예산을 더 분담하기로 했다고 미국 CNN과 영국 가디언이 2일(현지시각) 전했다. 세계 최대 군사동맹마저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면서 오늘부터 열릴 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에도 파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CNN은 지난달 29일(현지 시각) 익명의 나토 고위급 관계자를 인용해 "모든 동맹국이 새로운 비용 분담 공식에 합의했다"며 "새로운 공식에 따르면 유럽 국가와 캐나다의 비용 분담은 증가하고, 미국의 부담액은 감소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공정한 비용 분담에 대한 나토 동맹국들의 노력을 보여 주는 중요한 증거"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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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영국 런던 스탠스테드 공항에 도착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용기에서 내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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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가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미국은 해마다 1억 5000만 달러(약 1780억원)를 절약할 수 있다. 미국은 지금까지 나토 전체 예산 25억 달러 가운데 22%에 기여했는데, 2021년부터는 독일과 같은 수준인 16%를 내면 된다. 모자란 6%는 미국을 제외한 다른 회원국들이 메운다.

‘운영비’ 수준인 나토 연간 예산보다 중요한 사안은 국방비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비’ 수준인 예산 분담금을 줄인 수준에 만족하지 않고, 이번 회의에서 국방비 부분을 다시 도마 위에 올려놓고 중점적으로 다룰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1949년 이후 지난 70년간 나토와 비용보다 신뢰를 기반으로 한 돈독한 관계를 맺었다. 2차 대전 직후에는 공산권 바르샤바 조약기구에 대응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군사 동맹으로, 냉전 이후에는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포위망 역할을 자임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수단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 걸쳐 안정적인 안보 환경을 마련하는데 회원국 합산 매년 1조 달러(1190조)가 넘는 비용을 쏟아왔다. 그 절반이 넘는 700조원은 미국 주머니에서 나왔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은 이 부분을 겨냥해 "나토 회원국들은 그간 안보 비용을 미국에 몽땅 전가해 왔다"며 "회원국 별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비율을 4%까지 올리라"고 요구했다.

나토는 이미 2014년 ‘오는 2024년까지 국방비를 GDP 2% 수준으로 끌어올리자’고 합의한 상태. 그나마도 시한 절반이 지난 올해 기준 이를 충족하는 나라는 그리스·영국·에스토니아·루마니아·리투아니아·라트비아·폴란드를 포함해 9개국 뿐이다. 독일·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 같은 나토 주요 국가는 여태 2%조차 국방비로 내놓지 않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독일 방위비 지출은 GDP의 1.4%, 프랑스는 1.8% 수준이다. 이탈리아는 1.2%, 스페인은 0.9%에 그친다. 반면 미국은 GDP의 3.42%를 국방비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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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미국)를 대표하러, 미국인을 위해 열심히 싸우러 유럽으로 간다”는 내용을 담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위터.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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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도 내지 않는 국가에 두배가 넘는 4%를 요구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이 나토 회원국 정상들에게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용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나토 정상회의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면 미국이 스스로 나토에서 역할을 줄일 가능성이 크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7월 "나토 동맹국이 방위비에 더 기여하지 않으면 나토를 탈퇴하겠다"고 선언했다. 아만다 슬로트 브루킹스 연구소 연구원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집권 2기 도전을 앞두고 트럼프 행정부가 이전보다 부담감 없이 과감한 행동에 나설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나토 정상들은 이번 정상회의에 대비해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각국이 방위비를 대폭 늘렸다’는 논리를 펼칠 것이라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2024년 말까지 국방 지출 누적 증가액은 4000억달러(약 472조원)"라며 "지금까지 전례 없는 진전"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으로 돌아가서 재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에게 과시할 만한 돈 보따리를 준비한 셈이다.

그럼에도 유럽 정상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한 성격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보 달더 전(前) 나토 주재 미국대사는 미국 매체 악시오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할지, 무슨 행동을 벌일지 걱정하는 소리만 들려온다"고 말했다.

나토 정상회의는 3∼4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기간 독일, 프랑스 등과 연쇄 양자회담도 가질 예정이다. 같은 시기, 미국 워싱턴DC에서는 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이 진행될 계획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방위비 압박이 나토를 넘어 아시아까지 전방위로 이뤄지는 셈이다.

데이비드 스틸웰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2일 아시아 주요 동맹인 한국과 일본의 방위비 부담 문제에 대해 "최근 수십 년간 두 나라 능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다"며 "더 많은(further) 협력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유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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