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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여적]신라인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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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인은 어떤 모습일까. 70명을 입전한 <삼국사기> 열전에서 용모를 묘사한 대목은 거의 없다. 혹 있어도 ‘풍채가 수려하고 뜻이 올곧았다’(사다함)와 같은 상투적 표현이 대부분이다. 유독 문장가 강수의 열전에서는 ‘머리뼈가 높이 솟았고, 머리에 검은 사마귀가 있었다’고 적었다. 그의 용모가 특이해서다. ‘강수(强首)’는 그의 두개골 모양을 딴 이름이다.

신라인의 얼굴은 그림에서 만날 수 있다. 천마총에서 발굴된 기마인물도는 말을 달리는 신라인의 그림으로, 고구려 고분벽화 속의 기마도와 상당히 유사하다. 또 중국 양나라 때의 양직공도(梁職貢圖)에도 신라 사람이 보인다. 양직공도는 6세기 초 백제 사신의 양나라 행차를 그린 회화문서로, 당나라 때 염립본이 이를 모사한 ‘왕회도(王會圖)’에는 두루마기 복장을 한 신라 사신이 백제·고구려 사신과 나란히 서 있다.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에서 신라인의 모습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반가사유상은 원래 석가모니가 태자 시절 생로병사를 고민하며 명상에 잠긴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러나 7세기 신라 땅에서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이 신라인의 얼굴을 모델로 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지난해 보물로 지정된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는 신라인의 얼굴로 유명하다. 경주 영묘사터에서 출토된 이 수막새는 이마와 두 눈, 오뚝한 코가 조화를 이루며 미소를 머금고 있어 일찍이 ‘신라의 미소’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저께 참신한 ‘신라인 얼굴’이 공개됐다. 경북 경산 소월리 유적에서 발굴된 ‘사람얼굴모양 토기’(투각인면문옹형토기·透刻人面文甕形土器)가 그것이다. 높이 28㎝로 시루 덮개용으로 썼던 제기로 추정된다. 토기의 위쪽 3개 면에는 얼굴 무늬가 하나씩 새겨져 있다. 말하는 듯, 화난 듯, 무관심한 듯 제각각의 얼굴 표정이 흥미롭다. 그동안 말을 타거나, 물건을 머리에 이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신라인을 빚은 토우(土偶)는 종종 발굴됐다. 그러나 얼굴 표정을 다채롭게 그려낸 토기는 처음이다. 엄숙한 의례용 토기에 이모티콘과 같은 깜찍한 얼굴을 새긴 신라인의 해학과 재치가 돋보인다. ‘신라의 미소’에 빗대어 이를 ‘신라의 유머’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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