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19 (목)

이슈 은행권 DLS·DLF 사태

원금 날렸는데 "안전 자산"···우리·하나은행 DLF 이렇게 팔았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일보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40~80%.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에서 약 8000억원 규모로 판매돼 최대 원금 전액손실까지 일으킨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에 대해 지난 5일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가 적용키로 한 투자손실 배상비율이다.

배상비율 80%는 역대 최고 수치다. 금감원은 이번 배상비율에 적합성원칙, 설명의무 등 본래 불완전판매를 결정하는 요소뿐 아니라 은행 본점 차원의 내부통제 부실책임 등 과거엔 고려하지 않았던 요소까지 반영했다고 밝혔다. 불완전판매의 책임을 프라이빗뱅커(PB)와 투자자 개인의 문제에서 은행 본점 차원으로까지 확대 적용한 것이다.

금감원은 DLF 상품 출시에서부터 목표 설정, 판매까지 이르는 전 과정에서 은행 본점이 내부통제를 소홀히 했다고 봤다. 은행 본점이 PB에 상품 판매를 과도하게 독려해 사태를 키운 정황은 물론, 사태 발생 후 금감원 조사 때 불완전판매 사실을 부인하도록 유도한 정황도 발견했다. 금감원 발표자료엔 그 내용이 세세하게 들어있다.



우리은행, 상품 '찬성 의견' 만들어내고 원금손실 가능성 축소



우리은행 본점은 DLF 상품 출시 당시 내부 심의 조직인 상품선정위원회 참석위원 의견을 임의기재해 상품 승인을 유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상품선정위원 가운데 구두로 출시 반대의견을 표명한 위원을 상품 담당자와 친분 있는 직원으로 교체한 뒤 찬성의견을 받는가 하면, 평가표 작성을 거부한 위원에 대해선 찬성한 것으로 임의 기재하기도 했다.

원금 손실가능성도 최대한 축소했다. 우리은행은 상품 출시 당시 '원금 100% 손실 가능' 등 문구를 고객용 요약제안서와 직원용 교육자료에 반영하도록 한 공정가액평가실무협의회 의결사항도 이행하지 않았다.

PB 등 판매자 교육자료에서도 손실가능성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다. 계열회사 우리금융경영연구소가 지난 3월 27일 DLF 기초자산인 독일국채금리의 하락을 예측했음에도 우리은행 본점은 교육자료에 0.3% 내외 금리상승이 예상된다고 기재해놓고 5월까지 DLF를 팔았다. '원금 100% 손실 가능', '위험등급 1등급' 등 위험성을 알리는 내용은 교육자료에서 빠졌다. PB들은 이 교육자료만 믿고 고객에게 DLF를 "원금손실 없는 안전한 상품"이라고 소개했다.

은행 차원의 리스크분석도 무시했다. 손실확률이 0%라는 운용사 백테스트(Back test)만을 믿고 상품을 판매한 것이다. 심지어는 공정가액평가실무협의회에서 "과거 기초자산가격이 하락한 적이 있으며 향후 추가하락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실무자의 문제 제기가 있었음에도 이를 토대로 판매 계획을 검토하거나 보완하지 않았다.

중앙일보

지난 9월 19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과도한 판매 독려도 문제를 키웠다. 우리은행은 그룹 차원에서 자산관리 수수료수익 목표치를 매년 확대하면서 만기가 짧은 DLF를 '선취수수료 2·3모작 상품'이라고 강조해 판매토록 했다. 만기가 4~6개월로 짧아서 1년에 2~3회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단 뜻이다. 영업본부장은 고객 수와 금융수신 관련 직원들의 핵심성과지표(KPI)를 매일마다 관리하기도 했다.



KEB하나은행, 리스크관리 손 놓고 PB에 '모르쇠' 교육



하나은행은 상품 출시 단계에서부터 리스크 관리에 대해 손을 놨다. 우리은행이 참석위원을 바꾸거나 임의 찬성 의견을 기재하는 등 애쓰며 본점 입맛에 맞추려 했던 상품위원회를 하나은행 본점은 아예 열지도 않았다. 리스크 분석도 한 적이 없다.

상품위원회가 생략되다 보니 출시 당시 작성된 직원 대상 교육자료도 없었다. PB들이 교육을 받지 못하다 보니 상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됐고, 결과적으로 고객들에게 상품구조나 손실위험을 잘못 설명한 사례가 다수 발생하기도 했다.

중앙일보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본점.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투자자들 가운데엔 정기예금에 가입하러 갔다가 "정기예금만큼 안전하다"는 PB 제안에 DLF에 가입했다는 사람들이 다수다. 실제로 하나은행 본점은 DLF 가입 목표 고객을 '정기예금 선호고객'으로 선정하고, 이를 'DLF 세일즈 포인트(Sales Point, 판매 요점)'의 하나로 정리해 PB들에게 소개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하나은행 DLF 가입자의 59.6%는 통상 정기예금으로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비중이 높은 65세 고령자다.

하나은행 본점은 DLF 사태 이후에도 PB들에게 불완전판매 부인을 유도하는 내용의 질의응답(Q&A) 자료를 만들어 교육한 것으로 알려졌다. 111문항으로 이뤄진 이 질의응답서에는 "금감원 조사역이 관련 증거를 제시하기 전에는 1차적으로 '그런 적 없다' 또는 '기억 없다'는 취지의 답변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실제로 PB들은 본점 차원 자체조사 때 불완전판매로 확인된 건에 대해서까지 이후 금감원 조사 당시 불완전판매 사실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분조위 배상비율 결정에도…끝나지 않은 분쟁



금감원은 이르면 이달 중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에 대한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DLF 사태에 대한 은행의 책임을 물을 예정이다. 금감원이 그에 앞선 분조위 결정에서부터 은행 본점의 책임을 물었다는 점에서 조만간 열릴 제재심에서 경영진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금감원 일반은행검사국은 앞서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과 지성규 하나은행장, 손태승 우리은행장 등 최고경영자들을 제재 대상으로 명시한 검사 의견서를 각 은행에 전달했다. 문책·경고·정직·해임 권고 등 중징계는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와 금융위원회 의결을 거쳐야 최종 확정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에서 은행에 의견서를 보내면 이를 은행이 검토해 금감원에 돌려보내고, 이를 다시 보완해 은행에 보내는 등 지금은 제재심에 올릴 안건을 확정하는 과정 중에 있다"며 "징계 수준이나 대상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DLF피해자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DLF 사태, 금감원 분조위 개최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은행 측의 불완전판매를 넘어 사기판매를 주장하고 있는 일부 DLF 투자자들은 금감원을 연일 압박하고 있다. DLF피해자대책위원회와 금융정의연대는 오는 9일 오후 청와대에 DLF 분조위 재개최를 요구하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은행의 내부통제 부실 책임에 대한 배상 비율이 최소 50%는 돼야 하는데 20%에 불과해 터무니없이 낮다는 게 투자자들의 주된 주장이다.

DLF피해자대책위원회에 속한 한 투자자는 "은행이 작정하고 사기치는데 금융지식이 미천한 피해자들이 이를 어찌 알았겠나"라며 "이번 금감원의 분조위 발표는 결국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