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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 (월)

[‘김성회의 3세대 소통병법’] 위아래로 치이는 ‘짬짜 신세’ X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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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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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엑스세대니라. 40대, 엑스세대 리더들은 자신들이 회식 사역, 등산 사역을 하는 마지막 세대라고 자조한다. 사역은 종교기관에서 나온 용어로 종교의 교리를 따라 봉사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즉 상사의 회식·등산 등 요구에 순명, 거부 없이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지만 윗사람의 생각 DNA가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은 아니다. 베이비부머 임원들로서는 만만한 것이 엑스세대 관리자니 이들에게 단체콜을 빙자한 개인콜을 보낸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40대 K팀장 이야기다. 퇴근 무렵, 사장이 “약속 없는 사람, 저녁이나 같이 먹지. 밥 먹을 사람, ○○식당으로 와” 말한다. 이 말을 듣고 줄레줄레 식당에 가보니 온 사람은 자기밖에 없더라고. 한 번만이 아니다. 밀레니얼은 대상을 콕 찍어 이야기해도 “약속 있습니다” 거부할 의지가 있지만 이들은 없다. 굳이 지목해 이야기하지 않고 그물 던지듯 넓게 말해도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라 여겨 알아서 수용한다.

더구나 이들 엑스세대는 마지막 부장님 세대다. ‘상사’ ‘모시다’란 말을 조직생활의 금과옥조처럼 여겼지만 수평주의 조직문화 바람이 불면서 이제는 적폐 청산 대상인 구시대 용어가 됐다. 많은 조직에서 매니저, 프로란 호칭으로 함께 ‘도매금’으로 불린다. 시키는 일은 다 끌어안아야 하지만 마음대로 시킬 수는 없는 세대, 낀 세대가 엑스세대다.

엑스세대는 물려받고 물려주는 인수인계 없이 센 선배와 드센 후배 사이에서 양쪽 하중을 다 받고 있다. 위로는 단군 이래 최고 말발과 마당발 인맥을 함께 가진 기센 86세대를 모신다. 아래로는 워라밸을 지상 모토로 삼는 밀레니얼 상전을 모시고 있다. 더구나 이들 밀레니얼은 어려서부터 토론과 논술로 다져진 논리발, 게다가 온라인 네트워크력이 막강해 함부로 털끝 하나 건드렸다가는 온라인에 들불을 일으키기 십상이다.

40대란 나이는 생애주기상으로도 자녀 교육에 노부모 공양에 안팎 곱사등이로 부담이 클 때다. 조직 내에서 관리자로서의 위치도 안전하지 않아 눈치를 봐야 한다. 밀레니얼처럼 호기롭게 사표를 쓰고 이직하기도 힘들다. 지켜야 할 것은 많고, 선택지는 적고…. 비루해지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엑스세대가 처한 상황이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에는 늦고 있는 것을 그만두기에도 늦은 어중간한 나이. 인생의 오후 3시쯤. 40대는 그런 나이다. 지킬 것과 지켜야 할 것이 많기에 ‘부당한 줄 알아도 참고 불리한 줄 알아도 견뎌야’ 하는 때다.

공자는 40을 불혹(不惑)이라 했지만 조직에서는 부록같이 취급되는 것이 바로 이 나이다. 생애주기 면이나 조직 내 위상 면에서 모두 그렇다.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가지기는커녕 젖은 낙엽처럼 쓸려 나가지 않기 위해 바닥에 바짝 붙어 있어야 해 초라하다. 밀레니얼이 어찌 알겠는가. 비록 그들보다 월급을 더 많이 받는다 해도 가처분소득은 후배들보다 훨씬 적다는 것을. 후배들은 월급을 받으면 자기가 온전히 쓰면 그만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들 세대는 직급은 팀장일망정 용돈은 훨씬 적다. 통장은 텅텅 비어 ‘텅장’이 되기 일쑤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고 외쳐 박수를 받지만, 현실에서는 돈이 없으면 가오도 없다. 박수를 받기는커녕 외면을 당한다.

대기업에 다니는 40대 K부장은 엑스세대의 자화상을 ‘짬짜(짬뽕과 짜장면이 반씩 나오는 식사, 반반씩 섞임)세대’로 묘사했다.

“선배들의 부당한 모습을 보면서 ‘저런 리더는 되지 말아야지’ 단단히 결심했습니다. 문제는 그걸 대체할 리더십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우린 뭐든지 반반씩 경험한 짬짜세대예요. 경제도 호황과 불황, 리더십도 수직과 수평, 기술도 아날로그와 디지털…. 좋게 보면 포용성이 큰 것이지만 나쁘게 말하자면 양쪽 다 어중간해요. 짬뽕과 짜장면, 함께 나오면 좋을 것 같지만 같이 먹으면 맛없잖아요. 우리 엑스세대는 롤모델도 로드맵도 없는 상실의 세대입니다.”

이들은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한 말씀’을 할 기회를 잃어버린 세대다. ‘지적질’ 한번 하려면 장군 멍군 시나리오를 짜봐야 한다. 대책 없이 지적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기 십상이다. 이들은 선배 세대처럼 “나 때는 말이야” 하고 말할 성공 콘텐츠가 없다. 취직도 어려웠지만 승진도 적체됐다. 게다가 86세대는 장기 집권했다. 또 밀레니얼 후배 세대는 틀려도 과장돼도 들어주려 하지 않는다. 겉으로나마 들어주는 척하지도 않는다. 엑스세대가 신참 때는 상사의 리더십 비교 대상이래봤자 옆의 부서장이었다. 지금 밀레니얼은 넷플릭스, 아마존 등 실리콘밸리의 CEO들과 비교한다. 자기계발 직장인 모임에서 TV에서나 접하는 셀렙과 밥 먹고 공부하고 온 뒤 이야기할 때 ‘팀장 나부랭이’ 수준에서 감히 ‘나 때는’을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다.

모 대기업 중간관리자 J팀장의 이야기다. 후배가 직장인 모임 등에서 셀렙과 만나고 온 이야기를 자랑처럼 이야기하는 것을 우연히 들을 때 마음이 쓸쓸해진다고. 자신의 자리가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말을 해주고 싶지만 자격지심, 자기 변호라고 할까 봐 꾹 삼킨다.

“그런 사람들 이야기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수 있어. 지금 우리 회사, 네 상황에서는 비슷한 경험을 통과한 내 이야기가 더 유익할 거야. 그리고 자기계발 모임의 셀렙, 멋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과는 돈으로 산 관계일 뿐이야. 밖에서 얽히고설킨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이야기할까. 교과서 같은 이야기만 할 수밖에 없어. 왜 안에서 하는 이야기는 꼰대질, 지적질이고 밖에서 돈 내고 사서 듣는 셀렙의 이야기에는 팬덤을 일으키는지 답답해.”

윗세대, 베이비부머, 좀 더 정확히 86세대는 ‘나 때는’ ‘아, 옛날이여’를 노래해 ‘라테 상사’로 타도 대상이 됐다. 반면 이들은 ‘우유 상사’다. 우유부단해서 ‘부질없이 착한 팀장 되지 말라’는 지적으로 연민의 대상이 됐다. 그러면서도 책임이 다락같이 높아졌고 성과 목표도 여전히 높다. 하지만 권한은 쥐꼬리만 한 세태에서 쓴 눈물을 훔치는 슬픈 세대. 엑스세대 리더들이다. 목표 중독의 마지막 세대, 무리한 목표가 떨어지면 일단은 맞춰주고 뛰어보는 세대가 이들이다.

한 말씀할 자리도 잃었지만 한목소리는 더욱 내지 못한다.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버티기 위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맞바꿨다. 회사와 상사에 대한 불만도 마찬가지다. 젖지 않고 피는 꽃,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는가. 엑스세대가 무표정, 무덤덤으로 보인다고 불만마저 없겠는가. 밟는다고 꿈틀해봤자 수명만 단축됨을 알기에 참는 것일 뿐이다. 일단 적응하고 예스하고서, 나중에 기회를 살피려 할 뿐이다.

하지만 밀레니얼은 즉시 발사다. 한순간도, 단 하나의 손해도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밀레니얼은 억울하면 하소연할 SNS 익명 게시판 대나무숲이라도 있다. 모르는 사이에서도 동조해 벌떼처럼 들고일어날 십만 군사를 갖고 있다. 선배인 86세대는 독재에 대항하며 다져온 동지애를 사회 인맥으로 발전시켜 요소요소에 깔아놓은 굳건한 연대가 있다. 불리하면 함께 연대할, 적어도 기대보기라도 할 백그라운드가 있다. 그러나 엑스세대는 개인주의 세대로 마음을 풀어헤치고 이야기할 곳도 없다. 자급자족, 자력갱생이다. 잘하면 선배님, 후배님 덕이고 못하면 내 탓이다.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에서 주인공 인어공주는 다리를 얻기 위해 마녀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주고 벙어리가 된다.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남아 있는 3세대 중 가장 목소리가 작은, 심지어 잃은 세대가 이들이다.

취재 중 인터뷰한 한 엑스세대 부장의 말이 귀를 맴돈다.

“아, 우리 세대는 무대에 올라가보지도 못했는데 내려오라고 하네요. 분장실에서 분장도 마치지 못했는데 퇴장당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매경이코노미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36호 (2019.12.04~2019.12.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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