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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서 싸워라" 세계 18위 신화 쓴 大宇… 외환위기로 좌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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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경영자는 사업에 미쳐야 모든 것이 보이고 미래도 대비할 수 있게 된다. 특히 한창 커가는 기업에서는 경쟁력의 99%가 경영자에게 달려 있다."

9일 별세한 고(故)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직장 생활 6년 만인 1967년 자본금 500만원으로 대우실업을 설립해 국내 2위, 포천 글로벌 18위 기업으로 일궈낸 샐러리맨의 신화이자 '세계 경영'의 선구자다. 이와 동시에 역대 최대 규모 부도를 내고 분식 회계, 사기 대출 혐의 등으로 추징금 17조9253억원을 선고받은 '실패한 기업인'이기도 하다. 1970~ 80년대 한국 경제의 고속 성장을 상징했던 삼성 이병철 회장, 현대 정주영 회장과 함께 창업 세대의 막내인 김 전 회장은 자신이 사재(私財)를 보태 세운 경기 수원의 아주대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31세에 창업한 그는 32년 동안 대우그룹을 일궜고, 20년 동안 그룹 해체를 지켜보면서도 후진 양성에 힘을 쏟는 파란만장한 83년을 살았다.

세계 경영 대우, 포천 글로벌 18위

'희생, 세계, 청년'.

김 전 회장 지인들은 그의 인생 화두가 이 세 가지로 압축된다고 입을 모았다. 대우그룹 비서실 출신인 심준형 김앤장 고문은 "김 전 회장은 한 세대가 희생해야 다음 세대의 미래가 밝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말했다. 30여년간 김 전 회장의 해외 출장 거리는 총 954만㎞, 지구를 240바퀴쯤 돈 거리다. 조찬, 만찬을 2~3번씩 하는 등 하루 6끼 이상을 먹었고, 결혼한 날도 신혼여행을 가서 하룻밤 자고 다음 날 오후에 올라왔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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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파란만장한 인생은 사진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①지난 1999년 3월 (왼쪽부터) 이건희 삼성 회장, 김 전 회장,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전경련 신임회장단 취임인사회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김 전 회장은 1998~1999년 전경련 회장을 지냈다. ②1991년 김 전 회장이 ‘국민차’ 티코를 타고 임원회의에 참석하는 모습. ③김 전 회장이 2013년 4월 베트남 하노이 사범대학교에서 ‘글로벌 청년 사업가(GYBM)’ 교육생들과 대화하는 모습. 김 전 회장은 GYBM을 ‘인생 마지막 봉사’라고 말했다. /연합뉴스·오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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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그룹은 부실기업 인수를 통해 거대 기업으로 도약했다. 한국기계, 옥포조선소, 새한자동차 등을 잇달아 인수해 그룹 주력 기업으로 키웠다.

1990년대 들어 사회주의 붕괴 등으로 국제 정세가 급변하자, 김 전 회장은 1993년 '세계 경영'을 공표했다. 이를 통해 '신흥국 출신 최대 다국적기업'으로 대우를 성장시키는 등 대한민국의 경제 영토를 넓혔다.

대우그룹은 1998년에는 계열사 41곳, 해외 법인 396곳을 거느리며 자산 기준으로 현대그룹에 이어 국내 재계 2위 대기업, 포천 글로벌 18위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그 직전인 1997년 11월 닥친 외환 위기는 거침없이 몸집을 불리던 대우 신화의 몰락을 초래했다. 김 전 회장은 2014년 내놓은 회고록 '김우중과의 대화'에서 김대중 정부와의 악연이 대우를 해체한 주범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분식 회계와 대규모 추징금

김 전 회장은 한국 경제성장기에 주요한 역할을 했지만, 부실 경영으로 국가 전체를 휘청이게 하고, 투자자들에게 큰 손실을 입힌 공과(功過)가 극명한 삶이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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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99년 10월 중국으로 출국했다가 5년 8개월 동안 해외에서 생활했다. 2005년 6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입국할 때 배포한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사죄의 글'에서 자신을 '실패한 기업인'이라고 평가했다. 입국 직후 구속된 그는 2006년 11월 항소심에서 징역 8년 6개월과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9253억원을 선고받았다. 이듬해 대통령 특사로 사면됐지만, 추징금은 지난 14년 동안 미납 순위 1위를 지켜왔다. 법조계에서는 김 전 회장이 별세함에 따라 공범으로 묶여 있는 전직 대우그룹 임원들에게서 남은 추징금을 집행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김 전 회장은 말년에 베트남에 주로 머물며, 인재 양성 사업인 '글로벌 청년 사업가(GYBM)' 프로그램에 주력해 왔다. 평생 "젊은 사람에게 미래가 있다" "안에서 다투지 말고 밖으로 나가라"고 강조했던 그의 인생관이 담긴 사업이다. 장병주 대우세계경영연구회 회장은 "별도의 유언은 없었고, 마지막 숙원 사업으로 진행하던 해외 청년 사업가 양성 사업을 잘 유지·발전시키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고 말했다.

"우리 국민의 20%가 해외로 나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 국민이 산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김 회장이 생애 마지막 순간에 주변에 가장 많이 한 얘기라고 한다. 그의 한 측근은 "마지막까지 꿈을 꾸었고, 결국은 못다 이룬 꿈을 안고 세상을 떠난 '김우중'다운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신은진 기자(momof@chosun.com);석남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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