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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 (일)

"부하를 끔찍이 아꼈던 분" 백발의 대우맨들이 지킨 마지막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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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우중 회장 빈소 스케치]

손경식·정의선 등 각계 인사 조문… '대우' 로고 없이 조촐하게 치러

"지시도 칭찬과 격려로 하셨는데 오랫동안 고생하셔서 안타까워"

9일 별세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경기도 수원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은 마치 옛 대우그룹 임원회의를 옮겨놓은 모습이었다. 10일 이른 아침부터 김 전 회장 별세 소식을 들은 장영수·홍성부 전 대우건설 회장, 유기범 전 대우통신 회장, 김석환·강병호 전 대우자동차 사장, 추호석 전 대우중공업 사장 등 '대우맨'이 하루 종일 빈소를 지켰다. ㈜대우 임원 출신이라는 한 조문객은 "어젯밤 별세 소식을 듣고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왔다"며 "죄송스러운 마음밖에는 더 드릴 말씀이 없다"면서 눈물이 고인 채 빈소를 떠났다.

빈소는 "조촐하게 장례식을 치르라"는 김 전 회장의 평소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차려졌다. 고인이 생전 국내외에서 받았던 훈장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대우'의 로고도 보이지 않았다. 위패에는 세례명인 '바오로'만 적혀 있었다. 최윤권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위원은 "올해 들어 회장님 건강 상태가 나빠지자 유족에게 '대우장'으로 치르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다"면서 "유족의 뜻이 워낙 완강해 가족장으로 치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백발이 성성한 전직 대우 임원들은 빈소에 서서 조문객을 맞이하며 상주 노릇을 자처했다.

김태구 전 대우자동차 사장은 "열흘 전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는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셨지만 밝은 표정으로 맞아주셨다"며 "오래 고생하신 뒤 돌아가셔서 마음이 정말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본인은 일만 하면서 우리에게는 '식사 거르지 말라'고 챙길 정도로 부하 직원을 끔찍하게 사랑했던 분으로, 가족이자 큰 스승이셨다"고 말했다. 몇 주 전 고인을 문병했다는 신영균 전 대우조선 사장은 "단 한 번도 부하가 비참한 생각이 들게 야단친 적이 없는 분"이라며 "지시하는 것도 결국은 칭찬이자 격려였고, 부하 직원의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한 그분의 수완이었다"고 말했다.

이경훈 전 ㈜대우 회장은 "경기고 후배이지만 김 회장의 성품에 반해 그를 모시고 평생 일을 했다. 김 회장은 한 세기에 나올까 말까 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장병주 대우세계경영연구회 회장(전 ㈜대우 사장)은 "대우그룹 해체와 관련한 재평가는 추후에 역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족들은 조의금과 조화를 받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빈소에는 문재인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 허창수 전경련 회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이 보낸 조화 100여 개가 놓였다.

각계 인사들의 조문도 이어졌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40분 정도 빈소에 머물며 유족들을 위로했다. 이명희 회장은 고인의 아내 정희자 여사와 깊은 친분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한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추도사를 통해 "김 전 회장이 걸었던 길은 도전과 개척의 역사"라며 "우리 경제가 큰 어려움에 처한 지금, 전 세계를 누비며 답을 찾았던 고인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진다"고 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일하실 때는 잠도 안 주무시던 분이었는데 이제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우 임원 출신인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김 전 회장께 일을 많이 배웠고 그분을 평생 보스라고 생각한다"며 "새벽이든, 눈이 오든 현장에 나오시는 무척 부지런한 분이었다"고 말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정몽규 HDC 회장, 김동관 한화큐셀 부사장,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등이 빈소를 찾았고, 김 전 회장이 양아들처럼 아낀 배우 이병헌씨의 모습도 보였다.

장례는 고인과 유족의 뜻에 따라 천주교식으로 치러진다. 영결식은 12일 오전 8시 아주대병원 별관 대강당에서 열리고, 장지는 충남 태안군 소재 선영이다. 유족으로는 아내 정희자 전 힐튼호텔 회장, 장남 김선협 ㈜아도니스 부회장, 차남 김선용 ㈜벤티지홀딩스 대표, 장녀 김선정 (재)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사위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 등이 있다.





[수원=김강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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