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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 (월)

[김광일의 입] 동창리 위기 속에 ‘실종 인간’ 문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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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안보 상황이 다시 위기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작년 6월 싱가포르에서 있었던 미·북 정상회담, 작년 9월에 있었던 남북 정상회담, 이 두 회담에서 합의됐던 내용이 휴지 조각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올해 연말까지 앞으로 남은 20일 동안 그러한 일들이 결판날 것이다.

북한은 지난 12월7일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미사일 엔진 연소시험을 했다. 군 전문가들은 이 시험이 매우 심각한 의미를 갖는다고 보고 있다. 그동안 동창리 발사장은 대부분 ICBM용 엔진을 시험해왔기 때문이다. 북한은 2017년 3월18일 엔진 연소시험 나흘 뒤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달 12월7일 동창리 연소시험이 있은 다음날 북한 국방과학원은 "대단히 중대한 시험"이라고 했고, "북한의 전략적 지위를 또 한 번 변화시키는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전략적 지위’는 말할 것도 없이 핵과 ICBM 능력을 뜻한다.

급기야 미국은 안보리를 소집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이면서 더욱 옥죄거나 혹은 군사적 옵션을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수 있다. 2017년에 한동안 검토됐던 ‘선제적 타격’이나 ‘참수작전’ 같은 것들을 다시 꺼내든다는 뜻도 된다.

김정은이 정한 ‘연말 시한’이라는 게 있다. 미·북 실무협상을 연말까지 매듭짓지 못한다고 보고 김정은이 ICBM을 쏘거나, 아니면 인공위성으로 위장한 발사체를 쏘아 올릴 수도 있다. 그가 백마를 타고 쇼를 하는 것도 대내외에 이런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서 평양의 입은 거칠어지고 있다. "연말 시한부가 다가온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무엇으로 선정하는가는 전적으로 미국 결심에 달렸다." "미국이 무력을 사용한다면 우리도 신속한 상응 행동을 가할 것이다." "우리는 더 잃을 게 없다." "트럼프, 망령된 늙다리." 같은 표현이다.

물론 이런 험악한 분위기가 갑자기 급선회할 수도 있는 여지는 남아 있다. 리수용 당 중앙위 부위원장은 "트럼프가 겁을 먹었다." "트럼프의 막말이 중단돼야 할 것"이라면서도 이렇게 덧붙였다. "연말에 내리게 될 최종 판단과 결심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하게 되며 국무위원장은 아직까지 그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은 상태다."

한 가지 특기할 것은 트럼프와 김정은이 비핵화 협상이 ‘선거용’일 수도 있다는 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워싱턴 정가에서 분석가들이 하는 얘기였다. 그런데 최근 트럼프가 본인 입으로 ‘선거’라는 단어를 말했다. 먼저 김성 유엔주재 북한 대사가 지난 7일 로이터통신에 보낸 성명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이 추구하는 ‘지속적이며 실질적인 대화’는 국내 정치적 어젠다로서 북미 대화를 편의주의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시간 벌기 속임수다." 여기서 말하는 ‘정치적 어젠다’는 내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뜻한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직접 대꾸했다. "북한 김정은은 내가 내년에 선거를 치른다는 것을 안다." "나는 그가 선거에 개입하길 원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우리는 지켜봐야 한다." 트럼프는 김정은에게 ‘선거에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했다는 의미도 있지만, 이런 말들은 저들 사이의 한반도 비핵화 협상이 한반도의 영구적 안전을 위한다기 보다는 ‘선거용 쇼’라는 점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문재인 대통령과 문 정권 사람들은 이 핵심 무대에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은 실재하는데 ‘투명 인간’ 취급을 받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사람이 없다. 실종이다. 트럼프는 트위터에 "북이 비핵화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여기에 의견 일치를 본 곳으로 ‘나토, 중국, 러시아, 일본, 세계’라고만 거론했다. 한국은 언급하지 않았다. 한국은 북핵의 최대 피해자이자, 직접 당사자이자, 미국의 동맹국이다. 그런데도 트럼프의 안중에는 문 대통령과 문 정권이 들어있지 않다는 것이 확인됐다. 김정은도 마찬가지 태도다. 지난9월 북 정권 수립일 동영상을 보면 김정은이 트럼프, 시진핑, 푸틴과 만나는 모습만 나온다. 문 대통령과 세 차례나 회담을 했는데도, 그 장면은 하나도 없다. 통편집을 해서 무시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트럼프와 김정은에게 무시당하고 있는 것은 지금 정권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트럼프도 김정은도 문재인 대통령이 말 심부름을 잘못했거나 과장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지렛대로서, 중재자로서 가치가 제로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아예 제쳐놓고 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손을 놓고 있는 분위기다. 연말 안보 위기가 비등하고 있는데도 문재인 정부는 말이 없다. 최근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발사에도 숨을 죽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미국 특수정찰기의 한반도 비행에 국민 궁금증이 높아지는데도 청와대 안보실이나 군과 정보 당국은 설명이 없다. 동창리 시험이 있은 뒤 청와대는 국가안보회의(NSC)조차 열지 않았다. 강 건너 불구경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제 희망이 거의 사라진 북한 비핵화에 매달릴 게 아니다. 엄중한 안보 상황을 먼저 똑바로 보고 국민에게 솔직하게 설명해야 한다. 그 지점에서 우리의 대책도 시작될 수 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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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김광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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