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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탈원전으로 원전수출 기반 붕괴…中·러시아에 주도권 뺏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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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으로 원전 시장을 중국 등 경쟁국에 뺏길 위기입니다."

에너지 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에교협)는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원전 수출기반 붕괴-현황과 대책’ 제8차 토론회에서 현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참석자들은 "한국의 원전 수출 기반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며 정부의 정책 수정과 체계적인 수출 지원책 마련을 촉구했다.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UAE 원전수출 10년, 한국의 과제’라는 주제 발표에서 "2009년 12월 아랍에미리트(UAE)로부터 200억달러 규모의 원전 4기를 수주하는 감격을 맛본지 1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수출 강대국 대열에서 탈락할 위기에 처했다"고 밝혔다. 그는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수정하지 않으면 수주 후속타는 나오기 어렵고, 경쟁국에 원전 시장을 모두 뺏길 수 있다"고 했다.

조선비즈

에너지 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에교협)는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원전 수출기반 붕괴-현황과 대책’ 제8차 토론회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 이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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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세계 원전 시장에서는 중국과 러시아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토대로 공격적인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중국은 향후 10년간 해외 30여곳에 원전을 건설한다는 계획이고, 천연자원이 풍부한 러시아도 신흥국을 중심으로 신규 원전 건설에 나서고 있다. 온 교수는 "주요 수출국들은 원자로 건설을 비롯한 연료공급, 유지보수, 사용후핵연료 처리 등 완성된 핵주기로 접근하고 있어, 탈원전을 추진하는 한국으로서는 큰 약점"이라고 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한국의 원전 수출 잠재력은 높지만, 정부 정책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해 수출 성과가 부진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온 교수는 "현재 원전 수출이 가능한 국가는 중국, 러시아, 프랑스, 미국, 한국 등 5개국 뿐"이라며 "한국은 원전 기술이 뛰어나고 가격 경쟁력도 러시아, 미국, 프랑스 등보다 유리하나 이를 효과적으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최근 블룸버그 자료에 따르면 한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의 kW당 건설비용을 비교한 결과, 한국이 3717달러로 가장 낮았다.

한국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원전 수출 선도국으로 도약하려면 정부의 지원과 기술과 외교력의 결합, 관민 협조 체제의 강화 등이 시급하다고 온 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으로 이원화된 수출 구조를 일원화해 전력을 집중시켜야 한다"고 했다. 현재 한전과 한수원은 각기 따로 수출 사업을 추진해 원전 수출 업무 전문가의 양분과 협력 부재 상황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도 ‘원전수출 현황과 후속 수출실현 방안’ 주제 발표에서 "탈원전 정책으로 수출 물량 절벽을 맞게 된 한국 원자력 산업은 고사 위기"라며 "두산중공업(034020)은 내년 공장 가동률이 10%선으로 떨어져 극심한 경영난에 봉착할 전망인 가운데 460여 협력 업체 매출도 7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해 폐업기업이 급증하고 우수인력이 이탈하는 등 생태계 붕괴가 현실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원전 산업이 침체된 상황에서 업계가 고사하지 않으려면 정부가 원전수출 체계를 정비해 수출을 추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세계원자력협회 자료에 따르면 2030년까지 한국이 참여할 수 있는 신규 원전 사업은 약 50개로 추정된다.

주 교수는 "정부는 그간 범부처간 유기적 협력 없이, 장기적으로 수출 업무를 주관하는 주무자 없이 수출사업을 미온적으로 추진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원전 수출의 막대한 경제적, 외교적 효익을 고려해 ‘원전수출지원특별법’ 제정을 제안했다. 이 특별법에 따라 범부처 공무원과 원자력 산업계 실무자들로 구성된 원전수출진단을 신설해 정부가 주도적으로 원전수출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주 교수는 "먼저 신한울 3·4호기의 즉각적인 건설 재개를 통해 우리나라 원전산업 생태계 붕괴를 우려하는 도입국들에 대한 신뢰부터 회복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원전수출추진단은 1차적으로 사우디와 영국 원전 수출에 역량을 집중하고, 중단기적으로는 체코·폴란드·불가리아 등 동구권 국가를, 장기적으로는 인도네시아·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와 이집트·케냐·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국가를 대상으로 수출 전선을 넓혀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정부의 2020년 원전 수출 예산이 올해보다 1억원 늘어나는 데 그쳐 내년에도 원전 수출 성과가 미미할 것이란 전망이다.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탈원전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가 범정부 차원의 원전 수출 지원을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이는 내년 원전수출 예산이 31억원에 불과한 점이 말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전문가들은 탈원전 기조에 따른 국내 원전 기술의 해외 유출, 전문인력 이탈에 대한 우려도 표현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섣부른 탈원전 선언으로 3조가 넘는 바라카 원전의 과실은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고 비판했다. 그는 "세계 최고 수준의 APR-1400의 기술도 강제로 공개될 수밖에 없다"며 "바라카 원전의 유지·보수 계약을 확보한 기업에게 무제한적인 접근권을 허용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재은 기자(jaeeunl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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