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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스브수다] 조진웅의 뜨거운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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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funE

[SBS funE | 김지혜 기자] 배우 조진웅은 공식 석상마다 가슴 위에 노란 리본을 얹고 다닌다. '잊지 말자'는 마음을 되새기는 작지만 큰 의식이다.

배우로서 사명을 다하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 수행하고, 그것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는 것일 게다.

조진웅은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직업인으로서 최선을 다한다. 다만 그 결과에는 부침도 있다. 지난해에는 모든 출연작이 흥행에 성공했지만, 올해는 타율 5할을 채우지 못했다.

다행히도 2019년의 끝자락에서 조진웅의 포효를 봤다. 영화 '블랙머니'는 여러모로 반가운 영화다. 사회파 영화의 거장 정지영 감독의 건재를 확인할 수 있었고, 조진웅의 부활을 만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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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머니'는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영화다. 영화 속 지명과 인물은 모두 가상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이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실제의 사건을 기반으로 한다. 5천만 국민이 '눈 뜨고 코 베일' 뻔한 '론스타 게이트'가 모티브다.

영화는 대중이 조진웅에게 열광했던 연기의 정수를 만끽할 수 있다. 부조리를 향한 들끓는 분노와 진실 추적에 대한 열정은 관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돼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보다 선명해졌다. 조진웅의 힘이다.

◆ "원제는 모피아, 르포식 지양하되 생생하게 전달"

'블랙머니'는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진행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을 영화적 각색을 더 해 완성했다.

조진웅이 연기한 양민혁 검사는 극 중 스타 펀드가 대한은행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누명을 쓰게 된다. 누명을 벗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양민혁은 그 안에서 거대한 금융 범죄가 벌어지고 있음을 알게 되고 이를 폭로하기 위해 발로 뛰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온 이정호 PD로부터 시나리오를 받았다. 그때는 제목이 '모피아'(Mofia)였다. '이게 뭐지?' 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재정경제부(MOFE)+마피아(Mafia)를 합성한 말이더라. 처음에는 '나라 경제도 어려운데 이런 이야기가 관객에게 통할까?' 싶더라. 우선 정지영 감독님을 만났다. 두말할 것 없는 거장 아닌가. 첫 만남부터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70대인 감독님이 나보다 더 젊은 생각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더라. 신뢰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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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블랙머니'에 대해 "지금 대한민국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고하는 영화라고 생각됐다. 다만 르포처럼 너무 자세하고 딱딱하게 설명하는 식은 안될 것 같았다. 그래서 연출과 연기, 마케팅 과정에서 우리 모두 많은 고민을 했다"고 전했다.

양민혁은 영화의 주인공인 동시에 이야기의 화자다. 관객의 눈과 가슴 역할을 하며 대국민 사기극을 생생하게 전달해야 했다. 조진웅은 "막무가내로 돌진하는 역할은 과거에도 진하게 해봤다"면서도 "양민혁은 부딪히면 그저 아파하는 게 아니라 부딪힐수록 이성적이고 지성적으로 사안을 바라봐야 하는 인물이었다. 이 인물이 카메라 밖으로 페이드 아웃될 때 관객은 진실을 바로 보게 된다. 그렇게 되도록 하는 게 어려웠다."고 말했다.

"다 찍고 나서 모니터를 확인하는데 아니다 싶은 건 다시 찍기도 했다. "감독님 이 장면에는 양민혁의 화밖에 없는데요?", "그래? 우리가 이걸 놓쳤네"하고 재촬영하는 식이었다. 시나리오도 설계가 잘 돼 있었고, 메시지도 명확하고, 사건도 어렵지 않았다. 소송에서 지면 국민들 세금이 떼이는 거고, 그걸로 몇 놈들만 떼돈을 버는 이야기다. 다만 관객에게 사건을 객관화시키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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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의 사회적 역할? 소신 밝힐 수 있다"

조진웅은 연기로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관객의 공분을 자극하는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해왔다. 이번 작품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200% 해냈다. 그러나 모든 공을 감독과 동료 배우, 스태프에게 돌렸다.

"등 뒤에 감독님도 있겠다, 우리를 잘 서포트해 줄 스태프도 있겠다, 힘이 안 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앙상블이 너무 좋았다. 허성태, 윤병희, 강신일 등 연기 잘하는 선후배 배우들이 든든하게 현장을 받치고 있었다. 영화를 같이 만들어가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게다가 영화를 찍는데 기운 나게 하는 기사 하나가 있었다. 하나금융 승소.(론스타가 과거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해 하나금융지주를 상대로 제기한 약 1조 6,00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결과, 하나금융이 전부 승소한 뉴스) 이 영화를 빨리 만들어서 알려야겠다는 의지가 불끈 솟는 뉴스였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양민혁 검사가 국민을 상대로 선언하는 듯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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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었다. 연극을 안 한 지 꽤 오래됐는데 그런 장면이 있으면 연극할 때 생각이 많이 난다. 마치 관객 앞에서 연기하는 것 같다. 배우들간에 약속된 리액션이 있지만 군중 앞에서 연기를 하면 신명이 난달까. 이래서 내가 광대를 하는구나 느끼게 된다. 배우로서는 그 장면의 목적을 지켜서 연기하되 그 속에 있는 나는 광대로서 즐긴다."

조진웅은 드라마 '시그널', 영화 '공작', '블랙머니' 등 사회의 부조리를 다룬 다수의 작품에 출연해왔다. 또한 '세월호 리본 달기', '부마민주항쟁 기념식 시 낭송' 등 연기 외적인 행보로도 주목을 받았다. 배우로서 또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사회적 활동에 대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특별한 건 아니다. 연극하던 시절부터 극단 자체가 운동권 성향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의식을 갖게 된 것 같다. 지방에서 연극을 하면서 소극장 부활에 두 팔을 걷어붙이고 그랬다. 어떤 의식을 가지고 연극을 하는 건 좋은데 관객이 있어야 전달도 가능해진다. 45석짜리 공연에 37명만 들어도 만석이다. 그런데 연극예술경영 통계를 보면 만석이 됐을 때 진짜 관객은 40%다. 나머지 60~70%는 지인이다. 공짜 손님이라는 거다. 그렇게 해서는 연극판이 유지가 안 된다. 서울 가서 영화를 하겠다고 생각한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간을 학수고대하면서 달려왔다. 돈을 많이 벌고 유명해지는 건 중요하지 않다. 어떤 기회가 오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소신을 밝힐 수 있을 때 밝히는 것도 의미가 있다. 후배들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한다. '난 너의 의식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명해져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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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행 실패, 내성 생기는 일 아냐"

조진웅은 1년 사이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경험을 하고 있다. 들쑥날쑥한 '흥행 성적' 때문이다. 지난해 조진웅은 '독전', '공작', '완벽한 타인'까지 출연한 영화 모두가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는 최고의 해를 맞았다. 그러나 올해는 '광대들:풍문조작단', '퍼펙트맨'이 잇따라 흥행에 실패해 침체기를 보내기도 했다.

연이은 흥행 실패로 인해 관객을 만나는 일에 긴장이나 부담도 클 것 같았다. 이에 대해 조진웅은 고개를 끄덕이며 "영화가 성과를 못 내는 것에 대한 내성이 생기진 않는다."며 "영화는 혼자만 만드는 게 아니라 수십, 수백 명의 스태프가 함께 만든다. 흥행이 안 되면 모든 스태프들에게도 피해가 가니 주연 배우로서 책임감이 크다. BEP(손익분기점)를 못 넘기면 잠을 못 잔다."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 (안 좋은) 기운을 다음 현장에는 가져가지는 않는다"라고 마인드 컨트롤을 위한 노력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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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머니'는 조진웅에게도 조진웅의 팬들에게도 반가운 영화다.

"주제와 내용은 다소 무겁지만 상업 영화로서 가져야 하는 영화의 재미는 보장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까 이 작품을 한 게 다행이다 싶다. 처음에는 시나리오를 받고는 '왜 나한테 줬지' 싶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작업하다 보니 화가 나서 불끈불끈하더라. 시나리오를 읽을 때에는 이성적으로 인식만 했는데, 실제로 부딪히니 정말 화가 났다. 고스란히 잘 전달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의 바람처럼 영화의 의도와 목표는 관객에게 제대로 가 닿았다. 비수기 극장가에서 손익분기점(170만 명)을 훌쩍 넘긴 245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흥행의 단비가 내린 셈이다. 무엇보다 가장 조진웅다운 연기로 영화를 빛냈다는 것, 관객들에게 다시금 '배우 조진웅'에 대한 신뢰를 확인시켜줬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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