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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설왕설래] 100년 경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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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경방은 1919년에 만들어졌다. 3·1독립운동이 일어난 해다. 원래 이름은 경성방직이다. 인촌 김성수가 전국을 돌며 투자금을 받아 세운 회사다. 당시 주주는 188명. 근대적 형태를 갖춘 우리나라의 첫 주식회사이자 민족기업이다. 주주들은 이 회사가 일본 면직 자본에 맞설 보루가 되기를 바랐다. ‘직원은 조선인에 한한다’는 규정을 만들고, 1920년대에는 조선물산장려운동의 중심을 이루었다. ‘조선인은 조선인의 광목으로.’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자리는 그 구호를 외친 경방의 본거지였다.

올해로 100년을 맞았다. 축포를 쏴 올릴 때다. 하지만 경방은 우울하고 침통하다. 지난 8월 가동을 멈춘 용인 공장을 해체하고 있다. 기계를 베트남으로 옮기기 위해.

민족기업은 왜 베트남으로 떠나는 걸까. 조규옥 전방 회장의 ‘눈물 인터뷰’. 그는 이렇게 말했다. “6·25전쟁도, IMF 사태도 이겨냈지만 최저임금 인상은 견뎌낼 수 없다”고.

베트남은 멍든 우리 기업에게는 파라다이스와 같은 곳이다. 땅값이 싸다. 인건비는 우리나라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법인세는 4년간 전액 면제해주고, 이후 9년 동안 5%만 물린다. 우리나라는 어떤 곳일까. ‘비용의 지옥’이다. 높은 임금을 주고도 야근조차 시키지 못하며, 세금과 각종 준조세는 어느 나라보다 무겁다. 동남아로 떠나고 싶지 않은 중소기업인은 몇이나 될까.

민족기업? 이제 박물관 수장고에나 넣어둬야 할 낡은 이념이다. 생존과 사멸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기업에게는 사치스런 말일 뿐이다. 지금은 경제 국경이 사라진 시대다.

황당한 일이 또 벌어졌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는 “증세를 해야 한다”고 외쳤다. 조세부담률을 4∼5%포인트 더 올려 25%로 높여야 한다고 했다. 법인세·부가가치세 인상도 제안했다. 법인세 최고세율 25%도 낮다는 것인가. 부가가치세를 올리면? 국민 모두가 세금폭탄을 맞는다. 앞으로는 현금을 뿌리고 뒤로는 세금을 뜯는 표리부동한 조삼모사 정책이다. 왜 증세를 외칠까. ‘세금 살포’ 뒷감당이 안 되기 때문이다.

민족기업마저 탈출하는 척박한 땅. ‘100년 경방’은 우리 경제를 비추는 거울이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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