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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지지마,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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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魚友야담]

조선일보

어수웅·주말뉴스부장


종종 독자들의 육필 편지를 받습니다. 디지털 세상이라 더 반가운 아날로그의 반격. 이번 편지가 더 귀한 까닭은 자신을 위해 쓴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발신인은 시조 쓰는 남편을 둔 70대 여사님. 볼펜으로 눌러쓴 편지에는 '아무튼, 주말'에 시조 시인 남편이 소개됐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들어 있었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남편이 시조를 무척 사랑해서 모임도 만들고 유튜브로 소개도 하는데, 보는 사람이 너무 적다는 거예요. 구독자가 250명 수준이라 안타깝고 속상하다 했습니다. 남편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대상포진으로 고통받고 있다는군요.

문득 3년 전 이맘때가 떠올랐습니다. 12월은 문학 담당 기자에게 신춘문예의 계절. 그해 응모작은 무려 1만189편이었습니다. 근 15년간 최다 응모였죠. 책 읽는 사람도 줄어들고, 더욱이 문학 독자는 천연기념물처럼 드물다는 세상에서, 우리는 왜 신춘문예에 탐닉하는가. 그 이유로 썼던 칼럼 제목이 '시궁창에서 별 바라보기'였습니다. 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와 한국 소설가 문지혁에게 저작권이 있는 제목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예술은 어쩌면 시궁창에서 별을 바라보는 행위가 아닐까.

경험으로 압니다. 예술이라는 별은 그렇게 호락호락 자신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대부분은 무명(無名)이고, 시궁창에서 별을 바라볼 뿐이죠. 하지만, 하지만 말입니다. 무명은 정말 시궁창이고 암흑이기만 한가. 과학의 최신 연구는 우주의 96%가 이름도 모르는 암흑 에너지와 물질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인정 욕망은 인간 존재의 아이러니지만, 별은 저 멀리 하늘에만 존재해야 하는 걸까요. 우리 안의 심연을 밝혀 그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작은 별 하나를 발견하는 것도 예술이 아닐까요.

내 상처를 고백할 때, 남편을 위해 편지를 쓸 때, 우리의 글은 스스로를 치유하고 자신과 화해하는 게 아닐까요.

이번 주 출간된 책으로 '지지 마, 당신'(루아크 刊)이 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우리 섹션에 '순간 속으로'라는 문패의 에세이를 연재한 김현진 작가의 신작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시궁창에 있지만, 몇몇은 별을 바라보는 존재들. 당신을 응원합니다.

지지 마, 당신.

[어수웅·주말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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