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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사막이 아닌 무인도라서 그나마 다행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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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이용재의 필름위의만찬] 15. '캐스트 어웨이'와 서바이벌 식생활

조선일보

항공기가 바다로 추락했지만 간신히 목숨을 건진 척(톰 행크스 분)은 무인도에서 익히지 않은 게와 코코넛 따위로 힘겹게 생존하며 구조를 기다린다. /영화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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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가 얼마나 맛있는지 모르겠어. 그렇지 않아도 질려 버리려던 참이었거든. 코코넛을 더 이상 먹을 수 없었다고." 영화의 절반인 1시간 13분 만에 불에 익힌 음식을 먹는 척(톰 행크스 분)이 기쁨을 담아 말한다. 상대는 사람도 아니고 배구공 '윌슨'이다. 세상에 이렇게 슬플 수가.

묻고 따질 필요도 없이 '캐스트 어웨이'(2000년)는 슬픈 영화다. 세계적 물류 회사 시스템 엔지니어인 척 놀런드는 온 세계로 돌아다니느라 언제나 바쁘다. 삐삐가 울리면 크리스마스 가족 식사 때도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 급하게 출발한다. 그 탓에 계획해두었던 청혼마저 미뤘는데, 항공기 추락으로 바다에 빠져 버린다. 구명보트 덕분에 간신히 살아 남았으나 닿은 곳은 하필 무인도였다. 항공기 사고 확률은 0.0001%로 자연 임신으로 일란성 네 쌍둥이를 낳을 확률과 같은데, 그런 생존자를 하필 무인도에 떨구다니. 아무도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동료의 시신 한 구와 몇몇 페덱스 화물이 떠내려온다. 심신이 소진된 가운데서도 동료를 간신히 묻고, 생존에 유용할지도 모르는 화물은 직업 정신을 발휘해 뜯지 않은 채 일단 버틴다.

이런 여건을 뚫고 게를 먹었으니 그가 원조 '게맛왕' 대접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밈(meme)' 반열에 오른 햄버거 광고 문구 '늬들이 게 맛을 알아' 말이다. 광고도, 원로 배우 신구도 좋아하지만 '캐스트 어웨이'보다 2년 늦은 2002년에 등장했다. 또한 헤밍웨이의 고전 '노인과 바다'를 패러디했다고 알려졌듯 노인은 바다에서 고난을 겪었지만 결국 대왕게도 잡았고 구출도 되었다. 반면 무인도의 척은 이제 게를 구워 먹을 수 있게 된 것 외에는 아무런 희망도 없다. 마지막으로 광고 및 이름과 달리 햄버거의 게살 함유량은 30% 수준이었다. 당시 출시하고 매월 350만개를 팔 만큼 히트를 쳤지만 게 본연의 맛만 놓고 본다면 갓 잡아 직화에 구운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원조 게맛왕으로 인정받을 수 있든 없든, 무인도의 삶이 참혹했음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뗀석기(돌을 깨서 만든 도구)와 간석기(돌을 갈아서 만든 도구)의 중간쯤인 돌 쪼가리로 간신히 코코넛이나 먹다가 나뭇가지를 깎아 만든 작살로 게를 잡았지만 익히지 않았으니 살이 그냥 주르륵 흘러내린다. 우리라면 얼씨구나 좋다며 민족의 공인 밥도둑인 간장 게장을 어떻게든 담가보려고 애를 썼겠지만 그것도 일단 살아남아야 가능한 일이다. 대체 척은 어떻게 버텼을까? 만일 우리가 확률 0.0001%에 걸려 항공기 사고를 당해 무인도로 휩쓸려 왔다면 어떻게 삶의 지속 가능성을 꾀할 수 있을까? '의'와 '주'는 없어도 괜찮지만 '식'은 생존에 필요하다. 그리고 생존 기술이라면 군(軍)이 '맛집'이다. 존 F 케네디 특수작전센터에서 펴낸 '미 육군 서바이벌 가이드'(홍희범 옮김·길찾기)를 참고해 척의 상황에서 게를 구워 먹을 수 있을 때까지만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식생활 요령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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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

'333 생존 법칙'에 따라 인간은 공기 없이 3분, 물 없이는 3일, 음식 없이는 3주 동안 살 수 있다. 무인도에 발을 디뎠다면 일단 공기 부재의 위험은 넘겼으니 물과 음식 사이의 부재 시 생존 기간 격차를 마음에 새기고 수원(水源)을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일상에서라면 웃음거리가 될 이슬이 안전하고 안정적인 식수원이다. 천이나 가느다란 풀 더미를 발목에 묶고 동 트기 전, 이슬이 맺힌 풀숲을 걷는다. 천이나 풀 더미가 이슬을 머금으면 용기에 짜내고 걷기를 되풀이한다. 해변이라면 바다 반대편 땅을 파면 담수를 얻을 수 있다. 영화에서 척을 버티게 해준 코코넛 과즙은 수분이 풍부하지만 사하제(瀉下劑)로 작용하므로 조심한다. 많이 마셨다가는 설사로 인한 탈수로 수분을 더 잃을 수 있다. 참고로 섭씨 38도 이하에서는 물을 시간당 0.5L, 38도 이상에서는 1L 이상 마셔야 한다.

2. 식물

식물은 흔한 만큼 먹을 수 있는 종류도 많고 영양도 풍부하지만 그만큼 독을 품은 것도 많다. 안전이 검증되지 않은 식물을 먹으면 바로 죽음에 이를 수 있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세상 모든 식물의 안전 여부를 알 수는 없으니 '국제 표준 가식성(可食性) 테스트'를 활용한다. 해당 식물을 잎, 줄기, 뿌리, 봉오리, 꽃 등으로 나눠 한 번에 한 부분씩 시험한다. 일단 강하고 특히 시큼한 냄새가 나지 않는지 맡아본 뒤 팔꿈치나 팔목 안쪽에 문질러 독성을 확인한다. 깨끗한 물과 시험 대상 식물을 한 조각만 준비해 입술과 혀에 차례대로 문질러 반응을 본다. 가렵지 않으면 입에 넣고 15분 씹어 자극이 있으면 뱉고 없으면 삼킨다. 8시간 뒤까지 아무런 증상이 없다면 4분의 1컵쯤 먹고, 다시 8시간 기다려 괜찮으면 먹어도 좋은 식물이다.

3. 해산물

무인도는 해산물의 보고라는 측면에서, 고립되기에 사막 같은 곳보다 나을 수 있다. 일단 북반구의 생선과 알은 큰 의심 없이 먹을 수 있다. 초여름에는 빙어류의 물고기가 해안 지대에서 알을 낳으니 때가 맞으면 손으로 퍼 먹을 수도 있다. 다시마나 더 작은 해초류는 해안에서 좀 떨어진 바위에 서식하는데, 한여름에는 청어 알이 붙어 있는 것도 발견할 수 있다. 홍합이나 대합, 성게 알, 해삼 등이야 딱히 설명을 보탤 필요도 없다.

다만 모든 해산물이 우리 친구는 아니다. 상어나 가오리, 해파리처럼 살아 있는 상황에서 신체에 위협을 가하는 종류도 있지만 독성 탓에 먹으면 위험한 해산물도 많다. 복어야 워낙 유명하니 더 설명이 필요 없겠고, 주로 열대에 서식하는 파랑쥐치도 고기에 독을 품은 경우가 많으니 피해야 한다. 해파리, 뿔고둥도 위험하다. 없어서 못 먹는 문어는 대체로 안전하나 오스트레일리아에 서식하는 푸른점문어는 독을 품고 있어 위험하다. 모든 열대 문어 또한 먹을 수는 있지만 독을 품고 있어 주의해야 한다. 아열대 및 열대지방의 청자고둥은 작살 모양 독 가시를 지니고 있고 일부는 치명적이다. 또한 아이스크림 콘처럼 생긴 조개는 무조건 피해야 한다.

[이용재 음식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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