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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학교 다닐 때 태씨는 전교에서 나 혼자… 귀순 후 태씨 종친회가 제일 먼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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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평양남자 태영호의 서울 탐구생활]

조선일보

일러스트= 안병현


매년 12월 첫 주 일요일 열리는 대씨·태씨 중앙종친회 연차 정기총회에 다녀왔다.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는 "태씨는 발해를 세운 대조영의 후손이다. 우리 민족의 중심을 대동강과 한강으로부터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옮길 사명감을 안고 살아야 한다"고 훈계하셨다. 학교엔 태씨가 나 혼자였다. 아버지께 태씨가 적은 이유를 물어보니 "태씨는 원래 전라도 남원을 중심으로 많이 살았는데 정유재란 때 남원성을 지키라는 나라의 영을 받들어 왜군과 마지막까지 싸우다가 대부분 전사했다"고 하셨다.

한국에 온 후 아버지 말씀을 확인해보고 싶어 남원에 있는 '만인의총'을 찾았다. 거기에 모셔져 있는 장수 위패 중 태씨 장수 위패가 5개나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집사람과 상견례를 했을 때 "태씨라는 성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는 말에 이런 태씨의 역사를 쭉 훑으면서 흥분했던 기억도 있다.

수가 적으니 태씨끼리 만나면 무척 반갑다. 단결력도 강하다. 2016년 여름 한국으로 귀순한 후 국정원을 통해 나를 제일 먼저 찾아온 사람은 대씨·태씨 종친회 간부들이었다. 그분들이 내 얼굴 골격을 살펴보더니 태씨가 맞는다고 반가워하면서 족보를 가져왔는지부터 물어보았다. 북한에서는 족보를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 가문에서 족보를 없애 버린 것 같다고 하니 실망하던 모습이 선하다.

김일성은 해방 후 조선 혁명의 성격을 '반제·반봉건 민주주의 혁명'으로 규정하고 봉건적인 요소들을 다 없앴다. 지주와 부농의 토지는 물론 종친회나 종중의 토지도 몰수했다. 호적제를 폐지하면서 족보도 다 태워버리라고 했다. 그럼에도 일부 가문은 은밀히 족보를 보관하고 있다.

1992년 9월 북한 중앙방송은 고려 태조 왕건의 후손인 왕명찬이라는 노인이 지금까지 숨겨온 족보와 옥쇄를 노동당에 바쳤다고 보도했다. 김일성 주석이 자신의 선조인 왕건릉을 복원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에 왕씨가 감동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안타깝게도 보관하던 족보 중 3권은 소실된 상태였다. 사연인즉, 왕씨가 장롱을 뒤지다가 비싼 보에 싸인 책을 발견했다. 어머니께서 가보처럼 간직해온 족보였다. 왕씨는 당에서 알면 큰일 난다며 족보를 몽땅 아궁이에 집어넣고 밖으로 나갔다. 아들이 외출한 틈을 타 어머니가 불 속에서 족보를 건져냈지만 이미 3권은 재가 되고 말았다. 언론에서는 김일성의 애족·애민 정치를 선전하느라 이런 이야기를 보도했겠지만, 나는 속으로 '당국의 족보 말살 정책이 결국 민족의 중요한 유산을 재로 만들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남한에서 종친회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매년 남원의 '만인의총'에 화환을 올리고 경북 경산시 송백리 태씨 집성촌에 모셔져 있는 대조영 할아버지의 영정을 찾아간다. 올해는 종친회에 참가해 보니 지난해보다 여성 종친의 수가 늘어났다. 무용과 교수, 검사 출신 변호사, 현직 판사 등 사회적 지위가 높은 여성 종친이 많이 참석했다. 배우 태현실도 자주 온다고 들었다.

종친회에서 남녀가 평등하게 활동하고 여성이 족보에 오르는 것이 신기했다. 일부 가정에서는 부모 묘비에 묘주로 딸, 며느리도 올린다고 한다. 가부장적 문화가 강한 북한과는 다른 풍경이다. 종친회 총회에 참석했다가 돌아오니 아이들이 왜 그리 오래 머물러 있었냐고 물어왔다. 종친회가 나이 든 분들의 옛날 얘기나 듣는 데가 아니었다고 했다. 여성 종친의 식전 무용 공연, 국민의례, 경과 및 회계 보고는 물론 유명 대학 교수님의 발해 역사 강의 등 다양한 행사가 있었다고 하니 아이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최근 남이나 북에서 종친에 대한 개념이 사라져 가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우리의 독특한 전통을 세계화에 발맞춰 잘 조화시키는 길을 모색할 때가 아닌가 한다. 통일이 되어 남과 북의 대씨·태씨 종친이 통일된 족보를 편찬할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태영호 전 북한 외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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