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떠오르는 ‘총리 대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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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정치부 기자 |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
대한민국 국무총리는 조선시대 영의정처럼 임금(대통령)을 제외하고는 만인 위로 불리는 행정부의 최고위 직책이다. 딱 한 계단만 더 올라가면 1인자가 될 수 있지만 그동안 2인자들의 마지막 ‘관운’은 유독 안 풀렸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가 시행된 이후 33년간 총리 출신 대통령은 한 명도 없다. 장관 출신 대통령도(노무현 전 대통령은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냈다), 시장 출신 대통령도(이명박 전 대통령은 32대 서울시장을 지냈다) 나왔지만 유독 총리 출신 대통령만 나오지 않았다. 총리 출신들은 대권후보로 자주 거론되지만 빛을 발하지는 못했다. 대다수가 존재감이 없거나 권력 의지가 약했다. 여의도 정가에서 “총리를 거쳐서는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는 ‘총리 불가론’이 징크스처럼 있는 이유다.
한 여권 관계자는 “한국 사람들은 대통령 선거에서만은 ‘주인공’에게 표를 몰아주려는 경향을 보인다”며 “장관이나 시장 모두 한 조직 내 1인자이지만 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행정부 2인자라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요즘 새삼스레 다시 ‘총리 대망론’이 불거지는 건 여야 대권 선두주자가 모두 총리 출신이기 때문이다. 1일 서울신문이 리서치앤리서치와 진행한 신년 여론조사(지난해 12월 26∼29일 만 19세 이상 1010명 대상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에서 차기 대통령 선호도 1위는 이낙연 총리(34.5%), 2위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15.8%)였다.
○ 역대 총리 ‘잔혹사’
총리 출신으로 대권 직전까지 갔던 인물로는 김종필(JP) 전 총리와 이회창 전 총리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끝내 ‘2인자’의 위치를 넘어서지 못했다.
JP는 한국 현대 정치사를 대표하는 ‘3김(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중 국무총리만 두 번 지내며 권력의 중심에 올라섰지만, 정점에는 이르지 못했다. 1971∼1975년 박정희 정부에서 제11대 총리로 재임했고, 1998년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DJP 연합’으로 공동정부를 꾸리면서 2000년 1월까지 두 번째 총리 임기를 보냈다. 이후 정치권으로 복귀한 JP는 2000년 16대 총선에서 9선 국회의원 타이틀까지 다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17대 총선에서 참패하며 10선 고지에 오르지 못한 채 정계를 떠났다.
이회창 전 총리는 대법관과 중앙선거관리위원장, 감사원장 등 한국 최고의 ‘엘리트 스펙’을 쌓았고, 대통령 선거에 세 차례나 도전했다. 1993년 12월 총리로 임명됐던 이 전 총리는 이듬해 4월까지 125일간의 길지 않은 재직 기간에 김영삼 전 대통령과 번번이 각을 세웠다. 대통령과 갈등의 골은 깊어졌지만 불화 과정에서 단순한 2인자가 아닌 ‘대쪽 총리’로서의 모습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전 총리는 국민적 인기를 바탕으로 15대 총선 당시 여당이었던 신한국당의 선거대책위원장으로 화려하게 정계에 입문했다. 이듬해인 1997년엔 당 대표를 거쳐 차기 대선후보로 선출됐지만, 두 아들을 둘러싼 병역 의혹 조작 사건과 ‘차떼기’ ‘총풍 사건’ 등 잇따른 스캔들 속에 끝내 꿈을 이루지 못했다.
○ 높았던 현실 정치의 벽
고건 전 총리도 ‘대통령 빼고 다 해본 사람’으로 꼽힌다. 총리 외에도 서울시장과 광역단체장, 장관을 두루 거쳤다. 특히 2004년 3월엔 탄핵안이 가결됐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권한대행을 두 달간 맡으면서 여권의 유력 대권주자로 떠올랐다.
고 전 총리는 높은 대중적 지지를 업고 2006년 대권에 도전장을 냈지만 결국 2개월 만인 2007년 1월 스스로 불출마 선언을 하고 야인으로 돌아갔다. 당시 고 전 총리는 불출마 선언문에서 “대결적 정치구조 앞에서 저의 역량이 너무나 부족함을 통감합니다”라고 토로했다.
총리 출신 대권주자를 지켜본 한 여권 관계자는 “고위 공무원 생활을 10년 이상 하면 사안마다 A안, B안으로 올라오는 보고서에 익숙해진다. 하지만 정치는 고독한 선택과 결단의 연속이다. 때로는 치고 나가야 할 때도 있다”며 “보고에 따른 결재 문화, 관료주의에 길든 고위 공무원 출신 정치인들은 판단이 한 박자 늦다는 단점을 함께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정권 부침과 맞닿은 정치생명
‘뼛속까지 정치인’이라고 해서 성공적인 정계 복귀가 보장된 것도 아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총리를 지냈던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명숙 전 총리의 경우 정권 후반부 레임덕 속에 실정 책임을 공유하는 차원에서 정계 복귀 이후 내리 쓴맛을 봤다.
이해찬 대표는 대통령 그림자 역할이던 기존 총리의 관행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더 많은 권한과 책임을 행사하며 ‘실세 총리’로 불렸다. 잇따른 골프 회동과 구설수 속에 총리직에서 물러났지만 한 번 떠난 타이밍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퇴임 후 이 대표는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으나 정동영 후보(현 민주평화당 대표)에게 밀렸다. 이후 19, 20대 총선에서 당선되며 7선까지 했고 지난해엔 당 대표로도 선출됐지만, 일찌감치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기 때문에 ‘화려한 마무리’가 가능했다는 평가다.
이 대표에 이어 2006년 4월부터 2007년 3월까지 1년간 최초 여성 총리를 지냈던 한 전 총리도 이후 정계로 복귀해 당내 대선 경선에 뛰어들었지만 이 대표와 단일화하며 대통령 꿈을 접었다. 그는 2007년 열린우리당 대선후보 경선 비용 명목으로 9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2015년 8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2017년 만기 출소했다.
○ 다시 불거지는 총리 대망론
세간의 관심은 총선과 대선을 연이어 치르게 된 총리 출신 두 여야 대권주자들의 행보에 쏠리고 있다. 현재까지 차기 구도는 ‘이낙연 vs ’ 양강 체제다. ‘87년 체제’ 이후 총리 출신 정치인 두 명이 차기 레이스에서 양강 체제를 구축한 것은 전례가 없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장수 총리 기록을 매일 갈아치우고 있는 이낙연 총리는 기자, 4선 국회의원, 전남도지사를 거치며 그간의 총리 출신 대선주자와 다른 풍부한 정치적 경험을 축적한 게 차별화 포인트다.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한국 정치에서 현직 총리가 재임 기간 중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1위를 장기간 유지하고 있는 것 역시 이례적이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 총리는 높은 개인적 지지율을 안고 퇴임과 동시에 당으로 복귀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대권 행보에 도전할 시간과 기회를 갖게 됐다”고 평가했다. 그동안 약점으로 지적됐던 당내 조직 및 계파를 총선 과정을 거치며 보완할 경우 대선 행보가 더 탄력을 받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황교안 대표는 검사 생활 30년과 법무부 장관을 거쳐 박근혜 정부 마지막 국무총리를 지냈다. 이회창 전 총리처럼 정계 입문과 동시에 제1야당 대표 자리를 꿰차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정치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이 약점으로 거론됐지만 지난해 여름을 기점으로 문재인 정부와 대척점에 서서 장외투쟁을 이어오며 이미지 변신에 나서고 있다. 특히 삭발과 단식 등 보수권 총리 출신으로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운동권식’의 강성 투쟁 행보를 선보이며 그동안 기반이 약했던 당 내부도 어느 정도 장악해가고 있다.
특히 이 총리와 황 대표는 각각의 진영이 ‘대안 부재론’에 시달리는 독특한 정치적 환경 속에서 ‘차기 주자’로 소환됐다는 점에서 이전 총리 출신 대선주자들과는 달리 정치적 공간이 차츰 넓어지고 있다. 이 총리는 본인의 장기에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들의 잇따른 정치적 ‘낙마’까지 겹쳐 유력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고, 황 대표 역시 국정농단 사태 이후 지리멸렬한 보수진영에서 아직까지 별 도전자가 없을 정도로 구원투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물론 한계도 여전하다. 이 총리는 여권의 대주주인 친문(친문재인)계가 아닌 비주류. 당내 기반과 세력도 아직 약하다. 황 대표 역시 최근 연이은 강경 이미지로 외연 확장에 대한 부담감이 당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이 총리와 황 대표는 한국 정치에서 오랫동안 깨지지 않은 “총리를 거쳐서는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는 징크스를 깰 수 있을까. 이 총리, 황 대표 두 사람이 넘어야 할 첫 번째 고비는 100여 일 후로 다가온 4월 총선이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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