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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우리가 솔레이마니다, 미국에 죽음을"… 이란, 대대적 반미 여론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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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지도자의 눈물 생중계하고 聖地 돌며 솔레이마니 장례식

장례식 56명 압사도 즉각 알려

작년 말 경제난으로 반정부 시위

내부 불만 美로 돌려 여론 결집

이란이 가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을 제거한 미국에 대한 분노로 똘똘 뭉치고 있다. 아야톨라 하메네이(81) 최고 지도자가 직접 강력한 반미(反美) 투쟁 선봉에 나서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최근 민생난에 따른 대규모 반정부 시위와 유혈 진압 사태로 국내외에서 위기에 몰려있던 이란 집권층은 솔레이마니를 '순교자'로 삼아 국내 여론을 빠르게 결집하고 있다.

지난 6~7일 이틀간 수도 테헤란 등 전역에서 열린 솔레이마니 장례식엔 수십만~수백만명이 운집했다. 정부는 시아파 성지(聖地)로 꼽히는 도시 대여섯 곳을 옮겨 다니며 '릴레이 장례식'을 연 뒤, 사망 닷새 만인 8일 솔레이마니를 고향 케르만에 안장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사람이 죽으면 24시간 안에 매장하는 풍습과 배치된다. 영국 BBC는 "이란 당국이 많은 인파를 끌어모으려 애쓰고 있다"고 했고, 타임스오브이스라엘도 "이란에서 여러 도시를 돌며 장례식을 치른 건 1989년 초대 최고 지도자 호메이니 사망 때도 없었던 일"이라고 했다.

이란 국영 언론의 장례식 중계 화면을 보면, 상복 차림 이란인들은 국기와 솔레이마니 사진을 흔들며 "미국에 죽음을" "우리가 솔레이마니다" 같은 구호를 외친다. 방송들은 이란 국기에 둘러싸인 솔레이마니의 관을 붙잡은 시민들이 울부짖는 장면을 반복해 내보내면서 "트럼프 목에 현상금 8000만달러를 걸자"고 하고 있다.

지난 6일엔 신정 일치 국가인 이란에서 신(神)의 대리인으로 떠받드는 하메네이 최고 지도자가 굵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생중계됐다. 존엄한 존재가 펑펑 우는 모습을 공개한 건 처음이다.

이날 장례식엔 또 솔레이마니의 딸 제이나브가 나와 "중동에 있는 미국인들의 가족은 곧 그들의 아들이 죽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엄격한 이슬람 보수주의 국가인 이란에서 여성이 나서 목청을 높이는 것은 이례적이다. 제이나브를 '반미 아이콘'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7일 케르만에서 열린 장례식에서는 한꺼번에 추모 인파가 몰려들어 적어도 56명이 압사하고 200여 명이 다쳤다. 이란 정부는 이 인명 피해 상황을 즉각 공개했다. 평소 국내의 아무리 큰 사고도 즉각 보도·공개하지 않는 이란에선 이 역시 이례적이다. 압사 사고 역시 미국 탓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솔레이마니가 폭사(爆死)하기 직전까지 이란 정부는 지난해 11월부터 번진 반정부 시위로 궁지에 몰려 있었다. 미국의 강력한 경제제재로 원유 수출이 막히자 민생이 피폐해졌고, 유가 인상과 복지 축소 정책에 서민층 불만이 터져 나왔다. 특히 혁명 원로의 후손이 서방의 고급 문물을 누리며 호화 생활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가난한 젊은이들의 분노가 치솟았다. 시위 현장에선 "최고 지도자를 끌어내리자"는 구호까지 터져 나왔다. 성격이 비슷한 반정부 시위가 맹주 이란의 장악력이 약해진 '시아파 벨트' 국가 레바논과 이라크에서도 일었다.

체제 유지에 위협을 느낀 이란 정부는 시위대에게 발포하며 강경 대응했다. 유혈 진압으로 인한 사망자를 미국 등은 최다 15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특히 유혈 진압을 주동한 장본인이 솔레이마니 사령관으로 지목됐다. 솔레이마니는 또 정권 유지를 위해 경제난 속에서도 막대한 군비(軍費) 지출을 주도해 국민의 반감이 높았다.

하지만 솔레이마니는 미국에 폭살당한 이후 하루아침에 전설적 순교자로 탈바꿈했다. 미 캘리포니아주립대 알리 마크바르 마흐디 교수는 LA타임스 인터뷰에서 "이란 종교 지도자들은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상징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다"며 "다양한 상징을 활용해 국민이 피해의식을 느끼게 해 외부의 적과 싸우도록 하는 데 활용한다"고 말했다.

이란은 미국에 반격을 개시하면서 흐트러진 시아파 벨트를 재정비하는 기회도 맞고 있다. 레바논에서 친이란계 무장 세력이면서 동시에 집권 세력이기도 한 헤즈볼라가 미국에 대한 보복을 다짐했고, 이라크에선 친이란계 의원들이 뭉쳐 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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