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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 (일)

“불평등의 시대, 청년에게 목돈을!” … 기본자산ㆍ청년출발자본제 등 제안 쏟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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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2020년 출판계 키워드. 그래픽=신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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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는 절망의 시대였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10년의 시간을 ‘전 지구적 차원의 거대한 후퇴’라 정리했다. 그 정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이후에도 나아질 기미는 없었다. 정치적 양극화, 경제적 불평등은 심화됐다. 혐오와 차별, 포퓰리즘이 득세했다. 한국 또한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또 다른 10년이 열리는 2020년 초입에서 우린 ‘희망’을 입에 올릴 수 있을까. 올해 출간 예정인 책에서 시대정신을 추려봤다. 담대한 상상력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보려는 시도가 눈에 띄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사회구조적 변화를 모색해보려는 열망이 강하게 반영됐다는 평가다.

◇타도, 불평등! … 도발적 상상력

이제까지 출판계는 불평등의 ‘구조 해부’에 바빴다. 정치경제적 권력 자원을 독식한 ‘86세대’의, 불공정을 능력주의로 포장한 ‘엘리트 계층’의 꼼수와 민낯을 속 시원하게 까발렸다. 하지만,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똑 부러지는 답은 부족했다. 올해는 다르다. 진단과 비판을 넘어, 대담하고도 새로운 상상력으로 대안을 말하려는 책들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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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1세기 자본’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았던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가 신간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불평등을 극복할 구체적 해법을 제시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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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가 6년 만에 신작 ‘자본과 이데올로기’(문학동네)를 선보인다. 2014년 세계적 히트작 ‘21세기 자본’(글항아리)에서 불평등의 원인과 역사를 짚으면서 ‘불평등은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라 이념과 정치의 문제’라 했던 피케티답게 이번 책에선 제도적 변화 방안을 모색한다. 노동이 아니라 자산이 돈을 버는 시대에 접어든 만큼, 사회에 진출하는 젊은이들에게 정부가 아예 일정 정도의 자산을 종잣돈으로 지급하자는 ‘기본자산제’가 대표적이다.

‘사회적 상속’(이음) 개념도 새롭다. 정의당 싱크탱크 정의정책연구소 김병권 소장은 일정한 나이에 도달한 청년에게 기본적 수준의 ‘청년출발자본’을 제공하자고 제안한다. 한 공동체의 영속적인 번영을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김 소장은 이를 ‘사회적 상속’이라 부른다. 기본자산제의 한국적 변용인 셈이다. 또 노동 소득의 격차를 보정하기 위해 최저임금은 물론, 최고임금제 도입과 둘 사이의 연동 등의 방안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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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을 최우선 공약으로 내건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앤드류 양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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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21세기북스)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친숙한 불평등 연구자 브랑코 밀라노비치 뉴욕시립대 교수는 ‘홀로 선 자본주의’(세종서적)를 내놓는다. 밀라노비치는 이 책에서 불평등 해소를 위해서라면 불법 이민자 문제에 대해 다소 차별적이라 해도 일정 정도의 국민 자격을 부여해 끌어안아야 한다는 ‘시민권 경량화’ 방안 등을 제안한다.

핀란드의 실험으로 친숙해진 기본소득 논의도 본격화된다. 금민 기본소득 한국네트워크 이사는 지난 10년간 기본소득 연구를 집대성한 책을 4월 총선 전에 내놓을 계획이다. 이 책 출간을 준비 중인 동아시아 출판사의 최창문 편집자는 “현대 사회의 모든 소득에는 일정 부분 어느 한 개인에게 귀속되지 않는 ‘모두의 몫’이 있고, 이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 되돌려줘야 한다는 접근에서 기본소득을 제안하는 책으로, 한국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연구를 체계적으로 엮은 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낀 세대’ 80년대생이 저자로

‘90년생이 온다’(웨일북) 이후 다시금 불붙은 세대 담론 속에서 유독 잠잠했던 1980년대생이 드디어 입을 연다. 80년대생도 흔히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출생자)로 분류된다. 하지만 한국의 80년대생은 좀 특이한 점이 있다. 민주화 이전 시대에 대한 기억이 있으면서 동시에 디지털 시대에 열광했던 이들이다. 여기에다 80년대생들은 회사 등 조직에서 허리 역할로 떠안기 시작한 ‘낀 세대’다. 섣부른 분노나 절망보다는 합리적 균형을 찾아 묵묵히 변화를 모색하는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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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생으로 이뤄진 유튜브 채널 ‘헬마우스’팀은 80년대생이 바라보는 한국 정치의 문제를 다룬 책 출간할 예정이다.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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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이 꿈꾸는 80의 정치’는 80년대생의 목소리를 본격 대변한다. 가짜 뉴스를 때려잡겠다며 출범한 유튜브 채널 ‘헬마우스’ 팀이 저자다. 팀은 JTBC 팩트체크 프로그램에서 활약한 임경빈 작가,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 하헌기 CP 등 6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모두 80년대생이다. 책을 기획한 메디치미디어 이경민 편집자는 “80년대생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민주화와 산업화 중간에서 사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첫 세대”라며 “총선을 앞두고 80년대생이 바라보는 정치와 세상에 대해 일러주는 안내문이 될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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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경제를 일구며 영화제까지 출범시킨 전북 완주 너멍굴의 청년들. 너멍굴영화제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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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생이 모색하는, 대안적 삶도 흥미롭다. 흔히 ‘노가다’라 불리는 막노동을 번듯한 직업으로 삼은 30대 초반의 청년 이야기를 다룬 ‘노가다 칸타빌레’(시대의창), 서울에서 자란 청년이 골짜기 중의 골짜기라는 전북 완주 너멍굴에 들어가 농사지으며 살다 영화제까지 만든 과정을 그린 ‘너멍굴, 자립의 시대(시대의창)’ 등은 80년대생이 꿈꾸는 또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4월 총선, 우리의 선택은

올해 4월15일, 21대 총선이 예정되어 있다. 총선 시즌을 맞아 우리나라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이 응결된 책들도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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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진영 정치인들에게 대구 경북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성지다. 지난해 1월 정치 복귀에 나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해 분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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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 마음의 습속’(오월의봄)은 흔히 ‘TK’라 불리는 보수의 텃밭 대구경북 지역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깨어지지 않는 박정희 신화, 콘크리트 지지층이라 불리는 보수의 민심을 학술적으로 파고든다.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적 신념과 감정에 따라 여론이 형성되는 ‘포스트 트루스(post-truth)’도 화두다. 아무리 이성적인 판단을 하려 해도 자기도 모르게 가짜뉴스와 거짓 정보에 귀가 솔깃해지는 시대다. ‘쉽게 믿는 자들의 민주주의’(책세상)는 포스트 트루스 시대 민주주의의 미래를 가늠해본다. 정치철학자 김만권은 ‘외로워진다는 것’(여문책)을 통해 오늘날 정치에서 ‘집단적 외로움’이 전체주의를 불러올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정치적 과정에서 배제 당한 이들이 느끼는 외로움, 그리고 이 외로움이 빚어내는 정치적 파장과 효과를 따라간다. 이들을 조금이라도 덜 외롭게 할 정치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질문한다.

◇한국전쟁 70년, 광주항쟁 40년 … 역사의 해

지난해가 3ㆍ1운동 100주년이었다면,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 4ㆍ19혁명 60주년,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 40주년이다. 올해는 일제 식민지와 분단, 민주화 등 한국 현대사의 기점을 짚어보며 남은 과제를 모색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올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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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ㆍ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들이 연행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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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엔 ‘김군을 찾아서’가 출간된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무장 시민군의 행적을 좇은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의 제작노트로 영화에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후마니타스 강소영 편집자는 “5ㆍ18 이후 태어난 영화 스태프들이 5ㆍ18에 대한 망언과 왜곡이 넘쳐나는 현실 속에서 5ㆍ18의 현재적 의미를 되새긴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말했다.

8월 출간 예정인 ‘시민의 한국사’는 국내 최대 역사연구단체 한국역사연구회가 온 힘을 기울여 10년간 준비한 역작이다. 출판사 돌베개 김수한 주간은 “원래는 고대사 중심으로 서술했다가 ‘반일 종족주의’ 논란이 번지면서 현대사까지 폭넓게 다루게 됐다”며 “역사를 둘러싼, 의견이 분분한 논쟁들을 총정리한 책”이라고 말했다.

여성을 전면에 내건 책들도 흥미롭다. 한국전쟁 당시 전쟁피해 조사를 위해 한국 땅을 밟았던 국제여성민주연맹을 다룬 ‘1951년의 마녀들’(창비), 조선인 최초의 볼셰비키 혁명가였던 김알렉산드라의 일생을 다룬 그래픽노블 ‘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서해문집) 등이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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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양극화에 신음했던 2010년대는 절망의 시대였다. 또 다른 10년이 열리는 2020년엔 희망을 다시 꿈꿀 수 있을까. 지난 1일 부산 해운대구 송정해수욕장에 2020년 경자년 쥐띠 조형물 뒤편으로 첫해가 솟아오르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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