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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 (일)

“집회 나서는 어르신들의 공허함을 그림책으로 달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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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현 작가, 국내 첫 시니어 전문‘백화만발’ 시리즈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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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노인 할머니가 식물 가꾸기에 재미를 찾으며 삶의 의미를 깨닫는 그림책 ‘할머니의 정원’. 김주희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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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노인은 불행하다. 돈 없고 몸 아픈 것도 서럽지만 어디서도 제대로 인정 받지 못하고 있다는 심리적 박탈감이 그들을 더 좌절시킨다.

“태극기집회에 노인들이 왜 그렇게 열성적으로 나가는 걸까요. 마음이 외롭고 헛헛하니까 그래요. 그 공허함을 어떻게 달래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시작하게 됐죠.”

국내 최초 시니어 그림책 브랜드 ‘백화만발’을 기획한 백화현(61)씨의 얘기다. 백화만발에선 최근 50세 이상 연령대를 위한 그림책 3권을 동시에 내놨다. 중학교 국어교사 출신으로 학교도서관 운동을 펼쳐온 백씨는 그 중 2권의 저자로도 참여했다. 백화만발의 타깃층은 분명하다. 주요 독자층에서 소외 받았던 5090세대에게 읽을거리를 만들어주겠다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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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그림책을 내는 백화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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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러니까 아이들이 볼 것만 같은 그림책과 노인은 아무래도 낯선 조합이다. 하지만 백씨는 책을 어려워하는 노인들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가는 데 그림책 만한 게 없다고 단언했다. “어른이라고 해서 무조건 다 어른들 책을 이해하고 읽는다고 생각하면 오해에요. 어떤 어른은 칸트 철학서를 탐독하지만, 어떤 어른은 만화책 읽는 것도 힘겨워하거든요. 어린 시절부터 책을 멀리 했던 사람들은 그 격차가 더 심하죠.” 독서가 서툰 노인들에게 그림책은 책과 가까워질 수 있게 하는 마중물이자, 어른 책으로 넘어갈 수 있는 징검다리가 돼줄 거란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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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가족에게 희생했던 어머니 일대기를 다룬 그림책 ‘선물’ 한 장면. 김은미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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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그림책은 우리 주변 노인들이 겪는 문제와 고민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자식과 남편 뒷바라지에 평생을 바친 할머니가 가사 도우미와 우정을 쌓으며 뒤늦게 자신의 인생과 꿈을 찾게 되는 과정을 그린 ‘할머니의 정원’에선 경제적 버팀목이 사라진 여성 노인의 사회적 고립 문제를 건드린다.

평범한 전업주부의 삶의 숭고한 의미를 발견해 낸 ‘엄마와 도자기’, 딸이 자기 어머니의 일대기를 그린 ‘선물’은 여성의 희생과 헌신이란 무엇인지 되묻게 한다. 올해 출간 예정인 4권에선 은퇴 후 자신이 무가치하게 느껴져 힘들어하는 아버지들의 이야기도 다룰 계획이다. 민화나 자수 등 노인들이 즐길 만한 취미 활동과 문화생활을 소개해주는 그림책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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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만발은 노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풀어낼 수 있도록 일반인 노인 저자 발굴에도 적극 나선다. 공공도서관과 연계해 시니어 독서모임도 추진할 생가이다. 백씨는 시니어그림책이 노인들을 세상과 연결시켜주는 고리가 될 거라 기대했다. “아들 딸, 손자 손녀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쓴 그림책을 읽는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세대를 넘어 함께 공유하는 문화 콘텐츠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르신들에겐 큰 힐링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강윤주 기자 kkang@hankoo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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