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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깊게 생각할수록 좋은 말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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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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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민의 톡팁스-36]

◆말하기 전에 생각해야 한다.

"아직도 네 뜻대로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네가 계속 알았으면 좋겠어. 이 순간 그 소중함을 놓치지 말고, 미래를 바라보지 말고, 과거도 바라보지 말고, 이 순간을 바라보면서 그것을 살아가는, 그리고 네가 지금 2019년 말 오늘 느끼는 이 감사함을 언제나 가지고 가면 좋겠어."

2019년 12월 31일, 데뷔 30년 만에 처음 세종대학교 대양홀에서 팬미팅을 가진 양준일. 양준일은 그날 자신을 찾아준 팬들을 위해 노래는 물론, 여러 질문에 일일이 답했다.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양준일의 답변이다.

1991년 싱글 '리베카'로 데뷔한 뒤 1집 앨범 '겨울 나그네'(1991), 2집 앨범 '나의 호기심을 잡은 그대 뒷모습', 그리고 사라졌다가 8년 뒤에 양준일이라는 이름 대신 V2라는 예명으로 'Fantasy'(2001)를 내고 문뜩 사라진 가수 양준일. 결과만 놓고 보면, 양준일은 대중의 사랑을 받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가 사라진 '비운의 가수'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 양준일은 대중에게 전혀 다른 평가를 받고 있다. 21세에 데뷔했다가 30년이 지나 50세를 넘긴 양준일. 데뷔 당시에 화려하게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이제 만 50세라면 양준일은 KBS의 '가요무대'에 등장하는 흘러간 가수가 되었어야 맞는다. 하지만 2020년 1월, 양준일의 조명은 1991년 데뷔 당시보다 뜨겁다.

팬미팅 현장에서, 콘서트장에 운집한 팬들을 처음 목격한 양준일은 입을 열지 못했다. 그리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그 눈물의 의미는 팬들도 잘 알고 있었다. 뒤늦게라도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 준 팬들에 대한 고마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데뷔곡에서부터 정규 앨범에 실린 곡들까지 노래를 부르는 동안 양준일은 '정말 이 사람이 30년 동안 가요계를 떠났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녹슬지 않은 기량을 선보였다. 양준일의 공연을 보고 '될 사람은 된다'는 말이나, '연예인은 타고난다는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정도였다. 양준일은 정말 화려한 컴백 무대를 연출했다.

그러나 공연 무대보다 더 돋보였던 것이 바로 팬들과의 대화였다.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입장하던 팬들이 질문지를 적었고, 양준일은 사회자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이었다. 말 그대로 즉석 인터뷰. 평소 양준일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는 자리였다.

◆타인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

"원래 미래는 뚜렷하지 않아요."

양준일의 재치는 여러 곳에서 빛났다. 양준일은 참 많은 질문에 대답했다. 이 대답은 "어떻게 하면 이목구비가 제 미래보다 뚜렷할 수 있는 거죠"라는 어떤 팬의 질문에 양준일 한 대답이다. 양준일의 잘생김을 팬이 자기 미래와 연결해서 물은 것이다.

"원래 미래는 뚜렷하지 않다"는 말 한마디를 통해 양준일은 자신이 홀로 지내온 지난 30년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자기 자신도 이런 날이 올 줄을 몰랐다는 뜻도 될 수 있고, 잊힌 가수를 찾아준 팬들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말도 될 수 있다.

양준일은 생각을 많이 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순간적이지만, 양준일은 자신에게 쏠리는 관심을 팬에게 돌리는 재치를 보여준 것이다. 사실 팬은 양준일에게 두 가지를 질문한 것이다. 첫째는 불투명한 자신의 미래. 두 번째는 양준일이 잘생긴 이유.

자신의 잘생김보다, 양준일은 팬의 미래에 관심을 기울였다. "원래 미래는 뚜렷하지 않다"고 답변한 양준일은 자기 잘생김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결코 우연이 아니다. 팬들의 시야에서 떠난 30년 동안 양준일은 성숙한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순간이었지만, 양준일이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보여주는 증거이다.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하고, 2주를 쉬면 월세를 내지 못할까봐 염려한다는 생활인이 된 양준일. 그런 사실을 솔직하게 고백할 수 있는 양준일은 타인 중심의 사고를 하고 있었다.

◆깊게 생각할수록 좋은 말을 할 수 있다.

'시대를 앞서간 아티스트'라고 평가받지만, 데뷔 당시에는 뭔가 꺼림칙한 느낌의 가수였을 뿐이다. 굵은 웨이브를 준 긴 머리카락에 강한 비트의 음악, 그리고 느낌 강한 댄스까지 양준일은 선 굵은 이미지는 심었지만, 대중의 사랑을 받지는 못한 채 사라지고 홀연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렇게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과거를 재연하는 뉴트로 분위기 속에 어느 순간부터 대중은 잊힌 가수 다시 현실로 양준일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인 뉴트로는 복고(Retro)를 새롭게(New) 즐기는 경향을 뜻한다. 뜻밖의 상황이었다.

양준일의 데뷔 당시를 기억하는 팬들은 물론이고, 양준일의 데뷔 당시에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10대까지 양준일을 환호하는 것은 정말로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양준일의 존재감을 처음 드러낸 것은 '온라인 탑골공원'. 그렇지만 비운의 가수 양준일에 대한 동료 연예인들의 언급은 공중파 토크쇼 등에서 여러 차례 등장하기 시작했었다.

그렇게 등장한 양준일. 양준일은 30년 만에 무대에 올랐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몸매, 목소리, 무대 연출력을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성숙한 표현을 통해서 우리가 사랑해도 좋을 연예인이라는 느낌을 심어주었다. 30년을 기다린 듯, 원숙한 모습이었다.

"두 분 관계가 나빠진다면, 저를 내려놓고 서로를 더 잡으셔야죠. 서로만 바라보면, 상대방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다 보면, 단점이 보일 수 있어요. Boy & Girl Friend는 금방 끝나는데, Best Friend가 오래 가는 이유는 서로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같이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지요. 14년이면 같이 손 잡고 다른 곳을 바라보셔도 되겠네요."

'준일님을 두고 삼각관계 중인 커플이에요. 저희 어쩌죠'라는 질문에 양준일은 이렇게 답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양준일은 50세가 맞는다. 툭 던진 질문에 쏟아낸 생각은 무대를 떠나 30년을 생활인으로 지내면서 느낀 고락이 깊게 숨겨 있었다.

양준일이 사랑스러운 것은 한때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은 채 생활인으로 열심히 살아오면서, 대중을 위해 준비되어 있었다는 점뿐만이 아니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 역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다.

양준일은 생각 깊은 사람이다. 생각이 깊을수록 좋은 말을 한다. 변함없는 진리다.

"말하기 전에 생각해야 한다. 타인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 깊게 생각할수록 좋은 말을 할 수 있다."

[이성민 미래전략가·영문학/일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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