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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 (수)

이슈 [연재] 아시아경제 '과학을읽다'

[과학을읽다]동물실험 끝, 이제 '장기칩'으로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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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의 장기를 구성하는 세포를 배양해 '칩' 속에 넣은 '장기칩'이 상용화되고 있습니다.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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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연구, 즉 신약 개발 연구에는 직접 인간을 실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신 동물을 사용한 '동물실험'을 합니다. 동물실험을 통한 데이터를 근거로 인간에게도 엇비슷하게 적용되리라 기대하는 것입니다.


동물이 가진 유전현상, 물질 및 에너지 대사 등이 인간과 기본적인 시스템이 같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것이 동물실험입니다. 신약을 개발하기까지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우선 후보 물질을 발굴하고 원천기술을 연구하는 '탐색'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개발 후보 물질을 선정하는 단계가 있습니다.


후보 물질을 선정하고 나면 물질의 효능을 동물에서 알아보는 '전 임상시험' 단계가 있습니다. 동물에서 효능이 확인되면 마지막으로 실제 사람에게 적용해보는 '인체 임상시험' 단계가 있습니다. 마지막 단계인 인체 임상 단계까지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물실험을 통해 신약의 부작용이나 독성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인체 임상시험 단계를 거쳐 인체에 별다른 부작용 없이 효능을 발휘한다고 확인됐을 때 '신약 허가 및 시판'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단계인 전 임상실험 단계, 즉 동물실험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동물은 보통 생쥐라고 일컫는 '흰 쥐'입니다.


신약의 특성에 따라 토끼, 영장류인 원숭이 등 다양한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동물실험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한계는 동물과 인간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입니다. 동물실험에서는 부작용 없이 효능을 나타냈던 신약이 사람에게 적용하면 부작용이 발생하거나, 약의 효과가 사라지는 사례가 굉장히 많습니다.


신약 개발의 성공확률이 낮은 원인 중 하나가 바로 '동물실험과 인체 임상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물에게는 통하지만, 인간에게는 통하지 않는 것은 결국 인간과 동물이 다르다는 말이고, 이는 인간의 신약 개발에 동물실험은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다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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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의 각막과 결막 세포를 칩 속에 배양한 '안구 칩'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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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실험을 하지 않고 그 이상의 실험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그 방법이 바로 '오간온어칩(Organ on a chip)' 즉, '장기칩'입니다. 과학자들은 고민 끝에 인체 장기와 유사한 조직을 만들고, 그 조직으로 실험하는 방법을 고안해냅니다.


장기칩은 인간의 특정 장기세포를 배양한 뒤 이 세포들을 기계 칩 속에 넣은 것입니다. 해당 장기의 생리학적 특성을 최대한 흉내낼 수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세계 최초로 개발된 장기칩은 미국 펜실베니아대 허동은 교수팀이 만든 '폐 장기칩'입니다. 이 장기칩은 칩 속에 폐와 모세혈관 세포를 넣고 진공펌프를 연결, 폐가 숨쉬는 것처럼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도록 했습니다.


모세혈관 세포는 혈관과 비슷한 구조로 혈액이 통하도록 해 실제 폐에서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교환하는 것처럼 작동합니다. 약이나 독성물질처럼 일상에서 접하는 다양한 물질들에 진짜 폐처럼 생리학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만든 것입니다.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의 크기지만, 기능 면에서는 실제 인간의 폐와 다름이 없기 때문에 이 칩에 신약의 후보물질을 실험하면 그 효과나 부작용을 동물실험에서보다 더 정확히 알 수 있디고 합니다. 동물이 아닌 실제 인간의 세포를 사용했기 때문에 실험결과의 신뢰도는 동물실험보다 훨씬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폐 장기칩이 개발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장기칩 개발붐이 불고 있습니다. 2009년 14건이던 특허출원은 유럽연합이 동물실험을 거친 화장품의 제조판매를 금지하면서 급증하기 시작했고, 2017년에는 77건으로 5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7년 2월부터 동물실험을 한 화장품은 유통 판매할 수 없습니다.


세계 시장의 특허 종류는 세포배양 관련 소재와 장치에 대한 출원이 가각 20%와 18%, 칩 속에 구현된 센서장치 관련 출원이 12%, 장치칩을 이용한 약물시험 방법이 1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국내서도 장기칩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서울대가 창업한 벤처기업 '큐리오칩스'는 인체 장기칩 자체 개발에 성공, 상용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2011년 심장의 기능을 그대로 모사한 ‘심장 칩’이 개발됐고, 이후 실제 사람의 눈처럼 스스로 깜빡이고 세포 운동을 수행하는 ‘안구 칩', '신장 칩', '피부 칩' 등도 잇따라 개발됐습니다. '피부 칩'은 이미 상용화 돼 화장품 개발 때 독성검사 단계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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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의 주요 장기마다 칩을 만들어 그 칩으로 동물 대신 실험을 할 수 있습니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하나의 칩 위에 여러 개의 장기를 올려 놓는 장기칩도 개발되리라 예상합니다. [그림=유튜브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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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맞춤형 칩' 개발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습니다. 폐암을 앓고 있는 환자의 폐에서 세포를 추출해 폐 장기칩을 만드는 것입니다. 환자 본인의 세포로 칩을 만드는, 환자의 '미니 아바타 장기'입니다. 이 칩을 이용해 여러 폐암 치료제 가운데 가장 효과가 좋은 약물을 찾아내 치료에 투입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장기칩은 아직 특정 장기의 기능을 모사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합니다. 과학자들은 이제 하나의 칩 위에 여러 개의 장기를 올려놓는 미래의 장기칩 개발을 꿈꾸고 있습니다. 이런 개념의 장기 칩을 '휴먼온어칩(Human on a chip)'이라고 합니다.


지난해 국내서 인간을 위해 희생한 실험동물은 370여만 마리, 전 세계적으로는 1억 마리가 넘는다고 합니다. 폐 장기칩을 개발한 허동은 교수는 "20년 안에 동물실험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인간을 위해 더 이상 동물을 희생시키지 않는 그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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