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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현미경] 여자는 안된다고?… 美대통령 유리천장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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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美대통령 될 수 없다" 워런, 샌더스 발언 공개 파문… 민주당 여성 주자들 모두 주춤

"능력 탓 vs 편견 때문" 공방 속 "女후보, 제2 힐러리 된다" 우려

올해 대선을 앞둔 미국에서 '여성 대통령 불가론(不可論)'이 도마에 올랐다. 민주당의 여성 주자 엘리자베스 워런(70) 상원의원이 진보 진영을 비롯한 정치권 안팎에 성차별이 남아 있다고 폭로하면서다. 미국에서 여성 대통령이 안 나오는 이유가 여성 개개인의 수준 미달 때문인지, '여자를 국가 지도자로 뽑아줄 순 없다'는 편견 때문인지가 논란의 핵심이다.

워런 의원은 지난 13일 2018년 사석에서 버니 샌더스(78) 상원의원이 자신에게 "여자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밝혀 파문이 일었다. 샌더스는 "그런 말 한 적 없다"며 펄쩍 뛰었다. 진실 공방은 14일 민주당 대선주자 TV 토론으로 이어졌다. 이날 샌더스는 "난 30년 전부터 여성이 미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말해온 사람"이라며 억울해했지만, 워런은 "난 여자가 트럼프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당신은 동의하지 않더라"고 했다.

이어 워런은 토론 무대에 선 조 바이든(77) 전 부통령 등 남성 주자 4명과 여성 2명을 두고 "이 자리의 남성들이 기존 선거에서 패배한 횟수는 총 10회다. 선거 무패 기록을 가진 이는 에이미 클로버샤(여·59) 상원의원과 나뿐"이라고도 했다. 여성 정치인의 능력은 뛰어난데 뿌리 깊은 편견에 발목 잡혀 있다는 취지였다.

이 주장엔 복잡한 진실이 뒤얽혀 있다. 우선 워런 의원이 처음 성차별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 건 지난해 11월이다. 한때 여론조사 1위를 달리던 그의 지지율이 본격 하락하던 시기다. 당시 워런의 추락은 건강보험 공공화, 부유세 신설, IT 대기업 해체 등 급진 좌파 공약이 중산층 유권자에게 공포를 안겼기 때문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지지자들 사이에선 "워런과 정책 이념이 똑같은 샌더스는 지지율이 끄떡없는데 왜 워런만 피를 보느냐" "흑인도 대통령이 됐고 동성애자도 대통령감으로 거론되는데 여자에게만 장벽이 높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올해 민주당에서 여성이 대통령 후보로 지명될 가능성이 희박해진 건 사실이다. 역대 주요 정당의 여성 주자론 최다 기록인 6명이 출사표를 던져 여풍(女風)이 기대됐지만, 현재까지 여성 주자 절반이 중도 사퇴하고 워런마저 승산을 잃었다.

여성 정치인이 주춤하는 현상 뒤엔 이른바 '힐러리 트라우마'가 있다는 분석이 많다. 힐러리 클린턴(72) 전 국무장관은 화려한 정치 경력과 강력한 지지층을 갖고도 2016년 대선에서 정치 문외한인 도널드 트럼프(73) 대통령에게 충격패를 당했다.

대선 당시 트럼프는 클린턴 주변을 짐승처럼 어슬렁거리며 완력을 과시하고 "그녀를 가두라(Lock her up)"는 구호를 내걸었다. 이는 엘리트 여성에게 거부감이 큰 보수층 남성의 열광을 끌어냈고, 진보 진영 내에서조차 중장년 유권자들이 투표를 대거 포기하는 결과를 낳았다. 대선 패배 수락 연설에서 클린턴은 "누군가는 이 가장 높은 유리천장(glass ceiling·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깨기를 바란다"며 눈물을 삼켰다.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민주당에선 '여성 후보가 트럼프를 이기려면 먼저 힐러리를 넘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여성을 내세우면 또 클린턴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공포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도 "여성 정치인에겐 남성과 같은 능력과 야심을 모두 갖추면서도 '지나치게 공격적이지 않고 상냥해야 한다'는 이중 잣대가 작용한다"고 했다. 여전히 여성에겐 '유리천장'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정시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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