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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8 (화)

“글 깨친 할머니들에 용기와 보람 드려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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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문화상 북콘서트]<5>편집 부문 ’요리는 감이여’ 이혜선ㆍ신효정
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 지난 15일 서울 교보문고 합정점 내 배움홀에서 열린 제60회 한국출판문화상 북콘서트에서 편집 부문 수상작인 ‘요리는 감이여’의 편집자 이혜선(맨 왼쪽부터) 창비교육 편집부 과장과 책의 저자 중 한 명인 주미자 여사, 책을 기획한 신효정 충남교육청 평생교육원 사서가 발표에 앞서 자기소개를 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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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편집자의 감이 발휘되는 순간이 있다. 이혜선 창비교육 편집자에게는 2018년 12월이 그랬다. 평범한 어느 퇴근길, 습관처럼 주변 사람들 페이스북을 들여다보다 한 독립서점에서 올린 행사 사진 하나에 꽂혔다. 충남교육청 평생교육원의 문해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평균 나이 70세가 넘는 할머니들의 조촐한 출판기념회 사진이었다. “편집자는 말하자면 ‘콘텐츠 하이에나’에요. 어디에 글 쓰는 사람이 있는지, 무슨 책을 만들어야 하는지, 어떤 게 책으로 만들면 좋을지를 끊임없이 쫓아다녀요. 당시에 그 사진 한 장을 보고 감이 딱 왔어요. 그냥 이건 책으로 무조건 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 15일 저녁 서울 교보문고 합정점 내 배움홀에서 열린 제60회 한국출판문화상 북콘서트에서 이혜선 편집자가 편집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된 ‘요리는 감이여’의 탄생 비화를 소개했다. 글을 몰랐던 충청도 할머니들의 요리책인 이 책은, 지난 한 해 열띤 응원을 받으며 최근 4쇄를 찍었다. 이날 이혜선 편집자와 함께 책을 기획한 신효정 충남교육청 평생교육원 사서(주무관)와 책의 저자 중 한 명인 주미자(79) 여사가 함께해 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했다.

책 이전의 책이 있었다. 신효정 사서는 어르신들 이야기를 담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문해교육 프로그램을 들은 할머니 51명의 이야기와 요리법을 채록하고, 캐리커처와 삽화를 그려 넣었다. 신 사서는 “책을 만들어 본 적이 없어서 처음에 만들었을 땐 국어사전만큼 두꺼웠다”며 “원고정리 끝에 책 두께를 3㎝정도로 줄였다”고 말했다. 기념으로 출판기념회를 열었고, 그 때 찍은 사진이 이 편집자의 눈에 띈 것.

이 편집자는 “이미 다 만들어 진 책이니 우리 책은 한 마디로 그냥 날로 먹은 책”이라 했지만, 정작 신 사서는 “제대로 된 책이 나오자 할머니들이 ‘그 때 책은 책도 아니었네’라고 할 정도의 수준이었다”며 공을 서로에게 돌렸다.
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15일 서울 교보문고 합정점 내 배움홀에서 열린 제60회 한국출판문화상 북콘서트에서 ‘요리는 감이여’의 기획자인 신효정(맨 오른쪽) 충남교육청 평생교육원 사서가 책을 기획한 배경을 소개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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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이 편집자는 “한글을 모를 뿐이지 할머니들의 인생이 불우했던 것만은 아니었다”라며 “자기 인생을 꿋꿋하게 살아온 사람들인데 못 배운 이야기를 많이 싣고 싶지 않아서 여러 차례에 걸쳐 다시 채록했다”고 말했다. 신 사서는 “혹시라도 자식에게 누가 될까봐 할머니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감춘다”며 나름의 고충을 털어놨다.

이 편집자는 “책을 만들면서 ‘이 책과 관련된 모든 이들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자’가 목표였다”라며 “그 목표를 달성했고, 수많은 이들이 함께 만든 책이어서 더 의미가 깊다”고 했다. 신 사서는 “책 덕분에 지난해 정부가 주최한 한글날 기념식에 주미자 여사가 가서 처음으로 한복을 입고 애국가를 불렀다”라며 “할머니들께 용기와 보람을 드린 것 같아 행복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안타까움은 여전하다. 원래 53명의 할머니들이 참여했는데, 2명은 끝내 빠졌다. 이 편집자는 “글 모르는 사실이 알려지면 남편이, 자식이 혹시라도 무시 받을까봐 그러셨다”며 “그런 부분은 여전히 마음이 매우 아프다”고 말했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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