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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2020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자 3인…“나에게 문학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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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20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지난 14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소설 부문 당선자 이유리, 평론 부문 당선자 이소, 시 부문 당선자 박지일. 강윤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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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유리 “독자가 기분 좋아지고 상큼한 글 쓰고 싶어”

시 박지일 “시는 답이 없어…그래서 문학 하는 게 좋아”

평론 이소 “미투 등 사회적 사건 재현 작품들 눈여겨볼 것”


올해도 한국문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신인들이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독자들과 만났다. 소설 당선자 이유리(30)의 ‘빨간 열매’는 식물이 된 아버지와 살아가는 딸 이야기를 능청스럽게 풀어냈으며, 시 당선자 박지일(28)의 ‘세잔과 용석’은 낯선 대상을 탐색하는 태도와 시어가 매혹적인 작품이었다. 평론 당선자 이소(38)의 ‘남성 성장소설을 넘어서: ‘위안부’ 피해자를 재현한다는 것’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재현한 소설을 비판적으로 접근하면서 충실한 논의를 펼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서로 다른 매력을 지닌 당선작처럼 당선자들의 개성도 달랐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은 닮아 있었다. 지난 14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이들을 만났다.

■ 매일 출근 전 소설 쓰며 작가의 꿈 이뤄

이유리는 회사원이다. 숭실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해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당선 소식을 듣고 사무실에서 엉엉 울어버렸다. 이 눈물은 예비된 눈물이었다. 매일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출근 전 텅 빈 사무실에서 소설을 썼다.

어린 시절 일렉트로릭 기타를 연주하며 음악을 꿈꿨지만, 어느 순간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순간 연습하는 게 지겹고 즐길 수가 없더라고요.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려면 지루한 걸 참아야 하는데 책 읽고 글 쓰는 건 참을 만하다고 생각했어요.”

당선작 ‘빨간 열매’는 아버지의 유골을 넣은 화분에서 나무가 자라면서 줄기를 뻗어나가는 상상력과 이야기가 흥미롭다. “세계관을 만드는 걸 좋아해요. 머릿속에 세계가 있고, 거기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글로 쓰는 게 제 소설이에요. ‘아버지 유골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에서 이야기가 발전했어요.”

그는 “영상은 이미지 하나로 전달되지만, 텍스트는 천 가지 만 가지로 전달될 수 있다”고 말했다. “회사 일과 글쓰기를 병행하면서 글쓰기만 해도 먹고살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쓰겠다. 요즘 시대에 텍스트를 읽는다는 게 힘들고 마음을 먹어야 되는 일인데 제 글을 읽는 사람들이 기분이 좋아지고 상큼한 느낌이 드는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 ‘잘 모르겠다’는 질문에서 시작된 걸음

“잘 모르겠습니다.” 박지일이 가장 많이 한 말이다. 모르는 것을 함부로 안다고 하지 않기, 모르는 것을 모르는 채로 남겨둔 채 질문하고 탐색하는 과정이 그에겐 시쓰기다. 당선작 ‘세잔과 용석’은 그 결과물이다. “사물이나 단어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내가 다룰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썼습니다.”

처음부터 시를 쓴 건 아니었다. 대학교 사학과에 진학했지만, 곧 자퇴했다. 친구와 호프집을 하며 ‘볶음 안주’를 만들었다. 눈을 뜨면 출근하고 감으면 자는 삶이 너무 지루했다.

학교 도서관에서 손미 시인의 <양파 공동체>를 읽고 처음으로 ‘너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서 시를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문학을 좋아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문학을 하는 게 전 좋아요. 쓰는 행위를 통해 제가 유지되는 기분입니다. 시는 답이 없으니까, 저같이 잘 아는 게 없는 사람에게 잘 맞는 것 같아요.”

그는 시를 쓰는 순간을 연주자가 연주 도중 눈을 질끈 감는 순간에 비유했다. “그 순간에는 다른 곳에 있는 것 같다. 나는 물리적 시간 아래 있지만 쓰는 순간만큼은 저쪽에 가 있다고 믿는다. 저쪽에서 계속 갱신되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 사회적 사건 재현한 문학 공부하고파

“소설가 김숨이 위안부 피해자를 재현한 소설을 읽다가 이전에 위안부 피해자를 재현한 작품을 찾아봤어요. 그런데 많이 없더라고요. 무언가를 쓸 수 없는 이유가 쓰는 이유보다 더 중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소는 위안부 피해자 증언록을 찾아 읽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끌려가 학대당했던 할머니들의 언어는 단순하고 반복됐다. “문학적인 표현에 밑줄을 긋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부끄러웠어요. 남의 고통에 접근할 때 내 미감에 맞춰서 보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았죠. 작가들도 이 문제를 재현할 때 제한을 겪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위안부 피해자를 재현한 소설을 박사 논문 주제로 삼았다. 당선작은 논문의 일부다.

이소는 약학과를 졸업하고 약사로 일했다. 암병동에서 일하던 어느 날 환자들 이야기가 심각하지 않게 느껴졌다.

“젊은 환자가 찾아오면 비극이지만, 고령의 환자가 이야기하면 별 비극이 아니게 느껴지는 거예요. 못 살겠다는 순간이 찾아왔죠. 그래서 공부를 다시 하게 됐어요.” 조선대 국문과 김형중 교수의 강연을 듣고 “서늘하고 냉소적이면서도 뜨거운 요소를 지닌 태도”에 끌려 국문학을 공부하게 됐다.

이소는 필명이다. 타고난 것이 아닌 자신이 선택해 만든 공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광주민주화운동, ‘미투운동’ 등 사회적 사건을 재현한 문학에 관심이 있다. 재현이나 재현 불가능성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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