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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기고]아파트 회계부정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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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회계부정을 근절하기 위한 회계기준의 정립 필요성이 대두한 상황에서 공동주택 회계기준 제정에 참여한 적이 있다. 공동주택 회계기준을 검토하던 필자는 회계기준에 오류 수정 회계처리가 없음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참고로 오류 수정이란 과거에 잘못한 회계처리를 전기오류수정손익이라는 계정을 통해 손익항목에 보고하는 것을 말한다.

경향신문

필자는 회의장에서 오류 수정 회계처리를 추가할 필요가 있지 않은지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는데, 회의에 참석한 몇몇 분이 강하게 반대했다. 과거 오류 수정이 있으면 잡손실이나 잡이익으로 처리하면 되지, 오류 수정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순간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입주민들의 항의로 업무를 처리하지 못하거나 관리소장이 쫓겨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어리둥절했다. 오류 수정이 나타나지 않도록 정확하게 회계처리를 하면 되지 않는가(결국 회계기준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최근 아파트 관리 비리사건으로 관리직원이 목숨을 끊고 해당 부정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이번에도 문제는 내부통제제도의 중요한 수단인 업무분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했다. 관리소장이나 경리직원이 현금의 입출금을 기록함과 동시에 현금을 보관하거나 집행(승인)권을 갖고 있다면 횡령이나 비리는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현행 공동주택 회계기준의 금전보관 관련 항목(제23조)을 보면, 현금시재액을 매일 관리사무소장이 검사하고 회계담당자가 금고에 보관하도록 되어 있다. 물론 승인권자인 관리사무소장과 기록자인 경리직원이 업무를 분장하고 있지만 보관업무는 오히려 기준이 업무분장을 방해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관리사무소장과 경리직원이 공모한다면 업무분장의 효과는 사라진다.

최근 공동주택 회계감사의 투입 시간과 감사 보수가 늘어났지만 아파트 관리비 부정이 끊임없이 발생해 회계감사의 유명무실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발생한 아파트 관리비 부정은 회계감사의 투입 시간이 적어서 생긴 문제다. 수십년간 최소한의 감사 보수를 받고 공인회계사가 공동주택에 감사하러 가서 재무제표와 주석을 만들어주며 자괴감을 느끼는 시대는 이제 지나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입주민의 인식 전환이 중요하다. 공동주택의 관리업무는 모든 입주민이 동일한 서비스를 누리는 공공재의 성격을 지녔다. 외부 감사 비용이 일부 증가할 수 있지만 한 달에 커피 한 잔 값에도 못 미치고, 부정이 근절된다면 공동주택 입주민의 편익은 훨씬 증가한다.

앞서 필자가 주장한 오류 수정이라는 항목을 공동주택 회계기준에 포함시켰다면 부정의 예방효과가 일부나마 있었을 것이다. 오류 수정 항목이 있으면 회계담당자 입장에서는 오류 수정이 최대한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를 더 엄격히 하게 되고, 주민들 입장에서는 오류 수정이 발생했다면 왜 발생했는지 감시하게 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부정 근절에는 적발보다 예방이 훨씬 더 중요하다. 특히 부정의 예방을 위해 공동주택 회계감사에 대한 내부통제제도의 취약점 적발이나 효과성 평가를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관리주체가 선정해 가장 저렴한 수임료로 입찰 받은 공인회계사가 감사를 한다면 감사 계약을 유지하기 위해 관리주체의 비리를 눈감아줄 수도 있다. 감사인의 독립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공동주택의 경우 관리비의 일부를 감사비용으로 법제화해 지자체나 규제기관이 감사인을 배정하는 감사인 공영제의 실시를 고려해야 한다.

손혁 계명대 회계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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