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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일사일언] 애호박 탕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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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경련 2019 신춘문예 동시 당선자


아침에 애호박 탕을 끓였는데 모두 맛있다고 엄지 척을 한다. 내가 애호박 탕을 잘 끓이게 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재작년 여름의 일이다. 친정 엄마와 나는 어느 식당을 가서 애호박 탕을 시켰다. 그런데 밀려드는 손님들로 인해 밥은 생각보다 늦어지고 있었다. 웬일인지 종업원도 없이 아주머니 혼자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을 보니 재촉할 수도 없어서 마냥 기다리고 있었는데, 엄마가 나더러 "일 좀 도와 드려라" 하셨다. 조금 낯설었지만 부엌으로 가서 "제가 도와드릴까요?" 하니, 의외로 "네, 좀 도와주세요" 했다. 그때부터 나는 팔을 걷고 쟁반을 나르기 시작했다.

소주 주세요. 하면 소주를, 컵 좀 주세요, 하면 컵을 갖다 주었다. 서툰 모습으로 달려 다니는 분홍 원피스 차림의 내 모습이 아무래도 이상했나 보다. 다른 손님이 자꾸 나를 쳐다보았다. "사실은 저도 손님인데 아주머니 혼자 바빠 보여서 도와 드리는 거예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면서 조금 놀라는 눈치였다. 점심을 먹고 나서 계산을 하려 하자 아주머니는 한사코 돈을 받지 않으셨다. 오히려 마당에 따 놓은 단감까지 손에 쥐여주는 거였다. 엄마와 난 활짝 웃으며 대문을 나섰다. 그때 우연히 뒤돌아보다가 참으로 기분 좋은 광경을 보게 되었다. 손님 한 분이 부엌 앞에 서서 음식 쟁반을 받아 나르는 게 아닌가. 절로 미소가 머금어졌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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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가끔 여름이 오면 감나무 아래 평상이 놓여 있던 그 식당이 생각난다. 내가 애호박 탕을 잘 끓이게 된 것은 그날 아주머니가 나를 위해 특별히 더 맛있게 끓여주겠다 하여서, 옆에서 유심히 보고 배운 덕분이다. 그 후로 나는 애호박 탕을 끓일 때마다 그때의 일을 생각하며 즐겁게 요리하곤 한다. 요리 못하는 내가 아침에 엄지 척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아마 요리에 행복한 이야기가 스며 있어서였을 것이다.




[김경련 2019 신춘문예 동시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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