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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책과 삶]‘전쟁 범죄’의 사과 일본은 왜 주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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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에 대하여

아론 라자르 지음·윤창현 옮김

바다출판사 | 360쪽 | 1만4800원

경향신문

“미쓰비시는 우리를 동물 치급하고 죽도록 일만 시껴씀니다. … 이 양금덕이는 절대로 사죄업는 그런 더러운 돈은 바들 수 없읍니다.” 초등학교 시절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에 끌려가 강제노역을 한 양금덕 할머니(91)가 지난달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보낸 편지 내용 중 일부다. 양 할머니에게 일본의 ‘진실된 사과’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누군가는 너무 쉽게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절대 하지 못하는 것. 바로 ‘사과(apology)’다. 우리는 사과가 무엇인지 안다고 하지만, 사과는 생각보다 어렵고 예민한 문제다. 미국 매사추세츠의대 학장을 지낸 사회심리학자가 1000여건의 사과 사례와 임상경험을 활용해 20년 동안 사과의 의미를 파헤쳤다. 사과에 대한 학문적 이론을 최초로 정립한 이 책은 사과의 정의와 가치, 사과에 대한 가해자·피해자의 각기 다른 보상심리, 사과의 동기와 회피의 이유 등을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여성은 남성보다 사과를 하는 빈도가 높다. 사과와 관련된 남녀·문화 차이를 구체적 근거와 함께 설명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일본은 사과 관련 어휘가 유독 많고, 일본인은 미국인보다 더 많이 사과하고 더 많이 사과받는다. 반면 국가 개념으로 보면 오히려 사과에 인색하다. 저자는 일본이 ‘전쟁범죄’에 사과를 주저하는 이유에 대해 “다른 나라 또는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은 자신이 속한 집단 밖에 있기 때문에 애초에 사과받을 자격이 없다고 간주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사과에 서툰 사람이 읽어봄직하다. 저자는 “사과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초석이야말로 잘못된 과거사를 철저하게 인정하는 것”이라 말한다. 머릿속에 이 책을 선물하고 싶은 몇몇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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