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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일생을 시대와 함께 호흡…`다르게 보기`의 대가를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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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영국의 미술비평가 존 버거는 입지전적 인물이다. 기성세대의 예술 해석 방식을 단호히 거부하며 평론의 새 길을 열어서다. 그의 명저 '다르게 보기'는 누드화에서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시선의 정체를 예리하게 폭로해 예술의 저변에 숨겨진 '성의 권력'을 들춰냈다.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 수전 손택은 "존 버거는 감각적 세상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동시에 양심의 명령에 응답하는 비할 데 없는 존재"라고 했다. 현재까지도 '다르게 보기'는 미술 전공자들의 필독서로 꼽힌다.

2017년 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영면에 든 존 버거를 기리는 신작 '우리 시대의 작가'가 출간됐다. 존 버거 서거 3주기를 맞아 그가 걸어온 삶의 궤적과 사유의 깊이를 복기한다. 미국 예일대에서 비교문학과 영화 이론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저술가 조슈아 스펄링이 펜을 잡았다.

책은 평전의 기본 공식을 따른다. 존 버거의 삶을 시계열로 추적해, 그가 어떻게 이 시대의 지성으로 떠올랐는지 탐색한다. 존 버거의 시작은 저널리스트였다. 영국에서 활동한 그는 날카로운 필력으로 기득권층의 폐부를 찔렀다. 15년의 글쓰기는 그를 런던 최고의 논객으로 만들었다. 그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건 시대와 함께 호흡한 '글쟁이'라는 점이다. 베트남전을 계기로 서구 젊은이들이 기성세대 보수성에 반기를 든 '68혁명'이나, '돈의 자유로운 이동'을 기치로 내건 신자유주의 열풍에서도 좌파 활동가로서 이론을 제공했다.

존 버거의 가면은 여러 가지다. 비평가·소설·시인의 경계선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회화·문학·사진·영화·TV 등 주제도 다방면이다.

존 버거에게 '글'과 '행동'은 하나였다. 일생을 마르크스주의자로 산 그는 쓰면서 투쟁했고, 싸우면서 배웠다. 소설 'G'로 1972년 부커상을 수상하자 상금의 절반을 미국 흑인무장단체이자 정당인 '블랙팬서'에 기부했다. 부커상을 후원하는 부커 매코널사(社)가 카리브해 지역의 노역과 관계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나머지 절반은 유럽 이민노동자에 관한 책 '제7의 인간'을 출간하는 데 사용했다. '적'의 돈으로 '적'을 공격하는 존 버거의 재치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평전'의 균형감각은 아쉽다. 그가 걸어온 길을 객관적으로 '다르게 보기' 했다면, 평전으로서 더욱 빛나지 않았을까.

[강영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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