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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세종풍향계] 예산 '非시즌' 겨울방학 사라진 기재부 예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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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년 같으면 국회에서 예산안이 통과된 후 여유로운 겨울을 보냈을 기획재정부 예산실이 요즘 때 아닌 심의 작업에 한창이다. 이·불용(移·不用) 율이 높은 국가예산사업과 국고보조금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산실의 1월은 국회 예산심의 시즌이 끝나 상대적으로 한가한 ‘비(非)시즌’ 이다. 겨울방학 분위기에서 다음연도 예산안 편성 등을 위한 준비 작업을 하곤 했지만, 요즘은 수천개에 이르는 사업들을 일일이 따져보는 작업을 하느라 밤늦게까지 예산실 불이 꺼지지 않는 일이 잦다.

조선비즈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예산실 복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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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 예산실이 국고보조사업과 예산사업에 대해 존폐·삭감 여부를 놓고 전면 재검토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통상 여름철 편성 시기에 사업의 이·불용율 등을 고려해서 이를 예산에 반영하기 때문이다. 기재부 예산실 관계자는 "1, 2월 비시즌에 예산을 전면 재검토하는 작업은 처음"이라면서 "한가할 때를 이용해 예산 효율성을 높여보자는 (윗선의) 뜻"이라고 했다.

기재부가 예산을 꼼꼼히 톺아보는 것은 지난해 10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반복적으로 이·불용된 국가예산사업과 관행적으로 지출된 국고보조사업을 제로베이스(원점)에서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재정 지출이 가파르게 팽창하는 가운데 지출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나마 줄이기 쉬운 ‘누수·낭비성 지출’을 줄여 예산을 확보해보겠다는 것이다.

기재부가 발표한 ‘1월 재정동향’을 보면 정부 재정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정부 수입에서 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는 지난해 1~11월 누적치가 7조9000억원 적자다. 12월 한 달 만에 급격하게 반전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통합재정수지는 2015년 이후 4년만에 적자 전환이 예상된다. 수입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확장적 재정지출 기조가 이어져 국가채무는 지난해 11월 사상 최초로 700조원을 돌파했다.

기재부는 1, 2월에 걸쳐 폐지·조정 대상 사업을 추리는 리스트업(목록화) 작업을 마무리하고 3월 말에 발표될 예산 편성지침에 이를 반영하겠다는 방침이다. 내년 예산안 편성에 적용하겠다는 구상이다. 결과가 나오면 관련 부처와 협의를 거쳐 예산을 조정하겠다는 것이 기재부 입장이지만, 사업의 존폐까지 결정할 수 있는터라 관가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이와 같은 정부의 ‘근검절약’이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있다. 국가채무가 폭증하는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법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선심성 재정 편성과 방만한 예산 운영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없이 ‘땜질’만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나랏돈을 풀어도 경기가 나아지지 않고 일회성 사업으로 증발하는 악순환이 거듭되면 만성적인 재정적자로 국가 신인도에 금이가는 재정파탄이 올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정 전문가는 "이·불용율이 높은 사업을 검토하는 작업은 필요하지만, 지자체 등이 ‘뺏길 바에야 일단 쓰고보자’는 식으로 대응하는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면서 "그보다는 성과관리를 통해 돈을 효과적으로 쓰는 것이 우선이다. 나랏돈 503조원을 풀어도 경기가 나아졌다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데, 현정부는 그런 고민이 없어보인다"고 지적했다.

세종=최효정 기자(saudad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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