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정화조 300곳 뒤져 모기 유충 박멸 작업
"모기 유충 1마리, 6개월 뒤엔 1000마리로 늘어"
오염지 모기 미리 잡아 여름철 질병 막는 효과도
"이렇게 추운데 모기가 진짜 있어요?"
수은주가 영하 3도를 가리킨 지난 14일 오후 3시. ‘칼바람’에 롱패딩을 입은 남성 3명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 경로당 옆 정화조 뚜껑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약 1m길이의 국자를 집어넣어 오물을 한 바가지 떠 올렸다. 세 사람은 코를 들이박고 냄새를 맡는가 하면 이리저리 구정물을 살폈다. 이어 소주 한 잔 분량(50㎖)의 하얀 액체를 정화조에 풀었다. 정화조 안에서 바글대던 벌레들이 팔딱대기 시작했다. 모기 유충(幼蟲), 장구벌레다.
추운 겨울 모기가 없다는 건 착각. 용산구 보건소에는 겨우내 모기와 전쟁을 치르는 직원들이 있다. 이른바 ‘겨울모기 박멸단’이다. 매년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3명씩, 3개팀이 짝을 지어 ‘겨울 모기’를 잡으러 다닌다. 지난 2010년부터 벌써 10년째다. 방역팀 제갈영(54) 주무관은 "한겨울에 살아있는 모기 유충 한 마리를 잡으면 여름 모기 1000마리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일러스트=정다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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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에도 정화조 속은 20도… 모기 유충들의 ‘천국’
이날 용산구 보건소 직원들이 살펴본 정화조 16곳 중 6곳에서 장구벌레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겨울철 정화조는 장구벌레가 서식하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한다. 물이 고여 있지만 장구벌레의 천적인 송사리 등 물고기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정화조 내부 온도는 약 20도가 유지된다. 제갈 주무관은 "유충들이 주로 서식하는 곳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겨울철 모기 유충은 따뜻한 하수구나 지하실 같은 곳에 숨어 지낸다"고 했다.
이곳에서 겨울을 난 장구벌레들은 성충이 돼 3~4월부터 활동을 시작한다. 용산구에만 이런 장소가 300곳이 넘는다고 했다. 이날 쇠막대기로 맨홀 뚜껑을 여는 역할을 맡은 보건소 소속 공익요원은 "입대하기 전에는 모기가 겨울에 산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면서 "맨홀 뚜껑 뒤집는 게 일상이 되니 유충도, 모기도 익숙해졌다"라고 했다.
방제 작업은 단순했다. 정화조 뚜껑을 쇠 막대로 들어 올린 뒤, 기다란 국자로 오물과 분리된 오수를 떠서 장구벌레가 살고 있는지 육안으로 살피는 것이다. 장구벌레가 있다면 희석형 살충제를 정화조에 풀어 놓고, 2주 뒤 죽었는지를 다시 확인한다. 매일 약 10여곳의 정화조를 살피다 보니 요령도 생겼다. 배수시설의 특성상 한쪽 방향으로 더러운 물이 쏠리다 보니, 상대적으로 덜 더러운 쪽에 모기 유충들이 모여든다는 것이다.
이날 약 3시간 동안 16개 정화조 중 6곳에 살충제를 풀었다. 코를 찌르는 정화조 냄새에서 해방된 이들은 그제서야 마스크를 벗고 기지개를 켰다.
◇겨울모기 1마리, 여름엔 1000마리로… "겨울에 잡아야 효과 만점"
모기는 기온에 민감해 추운 겨울에는 거의 활동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 모기 유충 한마리를 그냥 두면 여름철 엄청난 수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겨우내 살아남은 모기 1마리는 여름철까지 약 5차례에 걸쳐 산란을 하는데, 한번에 보통 200마리가 부화된다고 한다. 어림잡아 겨울 모기 유충 1마리가 1000마리로 늘어나는 셈이다. 이희일 질병관리본부 연구원은 "산술적인 계산이긴 하지만, 겨울철 모기 유충 한 마리를 없애면 여름 모기 성충을 최대 1000마리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전염병 예방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서울 도심의 모기들은 대부분 인공으로 설치된 정화시설과 정화조 등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전염병을 옮기는 경우도 잦다. 숲모기는 활동 반경이 200m에 불과한 데 도심에서 사는 빨간집모기는 무려 10㎞에 이른다. 이 연구원은 "겨울잠을 자는 모기 숫자를 줄이면 여름철 모기 발생 시기를 일주일 정도 미루는 효과가 있고, 이는 여름철 주요 질병이 발생하는 시기를 피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겨울철 모기의 개체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파악조차 어렵다. 서울시와 질병관리본부 등이 따로 파악하지도 않는다. 이 때문에 겨울 모기 방제 효과가 구체적으로 얼마나 되는지 역시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서울시 등 지자체들은 겨울 모기 유충 방제작업 규모를 점차 늘려가고 있다. 용산구 관계자는 "구체적인 효과는 확인되지 않지만 효과가 있다는 것은 확실한 만큼 겨울철 방제작업을 갈수록 늘려가고 있다"면서 "향후 정확한 현황을 파악해 여름철 주민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대비하겠다"고 했다.
[권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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