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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시선]사할린 한인의 간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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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인천에서 비행기로 3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러시아 영토의 섬. 태평양을 바라보고 남북으로 길게 뻗은 이 섬은 남쪽으로 일본 홋카이도, 북쪽으로 러시아 본토와 마주하고 있다. 우리 동포들의 슬픈 역사가 새겨진 섬이다. 일제강점기로 거슬러간다. 당시 북위 50도 이남의 남사할린은 일본의 영토였다. 전쟁시기 일본은 국가총동원령에 따라 수만명의 식민지 조선인을 남사할린 탄광으로 강제징용 보냈다. 마을마다 할당된 징용 몫을 채우기 위해서 맏형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대신 징용길에 올랐고, 이제 막 결혼한 새댁은 남편 혼자 보낼 수 없어 보따리를 싸 뒤를 따랐다.

경향신문

사할린에 보낼 때는 일본 식민지 백성이었지만, 전쟁에서 패배한 일본이 섬을 소련에 넘겨주면서는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남겨졌다. 귀향선에 조선인은 탈 수 없었다. 남겨진 조선인들은 해방된 조국에서 자신들을 데리러 올 것이라 믿으며 사할린 섬의 남쪽 끝 항구도시 코르사코프로 모여들었다. 매일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망향의 언덕에 올라 고향으로 가는 배를 기다렸다. 하지만 냉전의 장벽은 멀지 않은 뱃길마저 가로막았고 해방 후 혼란했던 고국은 이들을 외면했다. 사할린에 남겨진 한인(韓人)들은 수십년 동안 망향의 그리움을 담고 동토의 땅에서 살아남았다.

1990년에 이르러 한국과 소련이 외교관계를 맺으면서 비로소 고향땅을 밟을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사할린 한인의 귀국을 위한 여러 제도가 만들어졌지만, 오랜 시간 동안 버림받았던 이들의 복잡한 삶을 담기엔 지금의 법과 제도는 너무 엉성하거나 무책임하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자신이 살아온 삶과 인생을 조국인 대한민국의 공문서에 사실대로 기록해달라는 것이다. 우리 법원은 2014년 무국적자로 살아온 사할린 한인2세에게 처음부터 국적을 이탈한 적이 없는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판결했지만, 지금도 복잡한 행정절차와 법적 공백으로 인해 한국인으로 기록되지 못한 동포와 그들의 자녀들이 많다. 사할린 한인의 삶과 이들의 가족을 공적으로 기록하는 것은 단순한 사실 확인을 넘어서 그동안 우리가 외면했던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기억하고, 이들을 우리 사회의 온전한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의지가 필요하다.

게다가 최근에 고국으로 영주 귀국한 어르신이 사망하였는데 자녀들이 우리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되지 못해 친족관계를 인정받지 못해서 사망신고를 비롯한 고인의 장례절차에 여러 어려움이 발생하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 남겨진 사할린 한인 동포들이 대부분 고령임을 고려할 때 시급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현행 ‘재외국민 가족관계 특례법’의 가족관계등록 요건을 체류국의 상황을 고려하여 완화하거나, 법무부 자체적으로 사할린 한인의 가족관계등록부 처리를 위한 별도 행정지침을 마련하는 것 등을 고려해보아야 한다.

“다른 욕심 없다. 죽기 전에 내가 한국사람이고, 죽은 남편과 남은 자식이 내 가족이라고 적힌 호적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올해 아흔셋 어르신의 소원이 하루빨리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조영관 변호사·법무법인 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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