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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지금, 여기]A하사와 함께 질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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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환 수술 후에도 군복무를 이어가고 싶다.”

2020년 1월16일. 중요한 뉴스가 전해졌다. 남성으로 임관한 A하사가 성전환 수술을 받았고, 육군이 그녀의 전역 여부를 심사할 예정이라는 소식이었다. A하사는 성별 정정을 신청해 놓았으며, 정정 후에는 여군으로 계속 복무하고 싶다는 의사를 군에 전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하사의 전역심사위원회가 열리는 이유에 대해 육군은 “음경 훼손과 고환 적출이 각각 5급 장애이고, 5급 장애가 두 개면 심신 장애 3등급으로 분류된다. 이는 전역 심사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경향신문

전역심사위원회가 열린다고 해서 A하사가 반드시 강제전역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과와 무관하게 이 뉴스는 이미 새로운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우선, 남군의 경우 음경과 고환이 없으면 장애로 판정된다는 점에 대해 생각해 보자.

국군의 음경과 고환에 대한 집착은 유명하다. 예컨대 2010년을 기준으로, 복무 적격자를 판정하는 신체검사에서 무정자증이 4급(보충역), 성기발육부진이 5급(제2국민역), 그리고 음경 절단 중 ‘성교 불능’이 6급(면제)으로 분류됐다. 2016년 이 기준이 다소 조정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신검에서 외부성기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도대체 정자 생산능력이나 성기 크기와 전투력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퀴어 이론가 루인은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에서 이를 꼬집으며 징병제를 통한 정상 남자 만들기는 다른 의도를 품고 있다고 설명한다. 즉 병역법은 이성애 규범적 성관계를 할 수 있는 신체와 생식력을 갖춘 남자만을 남성이자 보편 국민으로 인정함으로써 “남성의 섹슈얼리티와 몸을 관리하려는 기획”이라는 것이다. 군형법이 남성 동성애를 처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A하사를 지원하고 있는 군인권센터는 전문가 소견에 따라 “성전환 수술의 부작용은 호르몬 요법과 운동, 식이요법 등으로 대체 가능”하며 “고환절제술(성전환수술)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군복무에 부적합하다고 볼 의학적 근거는 부족하다”고 밝혔다. 더불어 A하사 역시 자신의 성별과 복무 능력 사이엔 아무 상관관계가 없다고 강조한다. 당연한 일이다.

두 번째로, 트랜스젠더 여군의 공식적인 탄생은 한국 사회에 팽배한 트랜스젠더에 대한 편견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많은 이들이 “트랜스젠더는 과도한 여성성과 남성성을 수행하면서 이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시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A하사는 전통적으로 남성성의 상징이던 ‘군인됨’을 주장함으로써 자신의 여성 정체성을 표현하고 있다.

물론 트랜스 여성이 ‘여성성의 신화’를 강화한다는 편견에는 “여자보다 더 여자다운” 트랜스 여성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온 사회와, 그런 사회 속에서 여성다움을 전시하고 수행함으로써 ‘여성으로서의 정상성’을 획득하려 했던 트랜스 여성들의 역사가 놓여 있다. 예컨대 영국의 여왕왕실수색연대로 5년 동안 복무하고 에베레스트산에도 등정했던 잔 모리스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성전환 수술 후 갑자기 차를 뒤로 주차하거나 병뚜껑을 따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것이 그의 시대가 요구한 여성성이었던 셈이다.

상황은 변하고 있고, A하사의 경우는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과도한 여성성을 수행하는 비트랜스 여성이 여성 전체를 대표할 수 없듯이, 트랜스 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것. 그리고 비트랜스 여성의 여성성만큼이나 트랜스 여성의 여성성도 사회적 조건에 따라 문화적으로 구성된다는 것. 이처럼 트랜스 여성의 여성됨은 하나의 스테레오타입으로 고정되지 않으며 유동적이고 다양하다.

트랜스젠더 여군의 탄생은 근대 국민국가 만들기를 통해 형성된 남성성과 여성성의 신화를 무너트리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더불어 트랜스젠더 인권운동의 발전과 함께 A하사의 싸움이 가능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성평등’이란 ‘다양한 성평등’으로 함께 온다. 군 당국을 비롯하여 한국 사회가 이런 시대의 변화를 읽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손희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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