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동남아발(發) 외환위기가 단 3개월만에 한국에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를 부른 이후 정부는 아세안과의 협력에 적극 나섰다. 당시 한국은 동아시아 비전그룹(EAVG)을 주도했고 아세안도 한국에 많은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이후 한국경제가 'V'자 형태로 빠르게 회복되면서 아세안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급속히 사라졌다. 문재인 정부가 신남방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아세안 일각에서는 '한국이 또 저러다 말겠지'하는 우려도 있을 것이다"
한·아세안 협력 업무를 장기간 맡았던 이선진 전 주인도네시아 대사는 10일 매일경제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며 자칫 또 한 번의 '1회성' 이벤트가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는 이야기다. 이 전 대사는 "이전에도 아세안을 강조했던 김대중 정부때와는 달리 노무현 정부때에는 외교정책 중심이 동북아로 옮겨지면서 사실상 대아세안 외교가 방치됐다"면서 문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신남방정책을 직접 챙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만일 내년에 북핵과 한반도 문제가 급박하게 돌아가며 문 대통령의 관심도가 낮아진다면 신남방정책은 또 한 번 형해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아세안 외교에서의 '일관성'은 신남방정책의 지속가능성을 뒷받침할 최우선적 요소다.
최원기 국립외교원 교수는 지난해 발간된 책 '한·아세안 외교 30년을 말한다'에서 "역대 한국 정부의 아세안 정책은 그때그때의 필요성에 따라 구애와 방기를 반복해왔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은 과거의 편의주의적 아세안 정책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적극적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권 교체와 별개로 안정적인 대아세안 외교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신남방특위의 존립 근거를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문재인 정부 이후에도 신남방특위가 지속된다면 아세안·인도 외교 정책을 안정적으로 추진해나갈 제도적 기반이 생기는 셈이다.
전직 외교 관료는 "적어도 신남방정책이 완전히 정착될때까지는 신남방특위가 존속되는 것이 좋다"는 견해를 펼쳤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통일준비위원회'가 법제화되지 못하며 흐지부지됐던 사례도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겸직 중인 위원장도 전문성을 갖춘 인사를 발탁해 신남방 업무에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신남방정책 2.0'에는 대아세안 외교의 지역·분야 편중성을 극복할 방안이 담겨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베트남 쏠림' 현상을 극복하고 협력 분야도 북핵·무역 분야를 넘어 전반적 외교전략까지 넓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를 중심으로 중점 협력대상국을 확대해야 한다는 견해를 펼쳤다. 이 위원은 "이들 세 나라는 일본이나 중국의 진출세가 세지 않다"며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새로운 전진기지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정부와 학계에서는 인구 5000만 명이 넘고 지리적 연결성과 생물 다양성이 탁월한 '젊은 국가' 미얀마를 주목하고 있다.
정부가 '4강' 수준으로 격상시킨 한·아세안 관계를 활용해 확실한 중견국 연대를 묶어내는 것도 '신남방정책 2.0'에 담겨야 할 중요한 과제다.
서정인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준비기획단장은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가속화될 경우, 한국, 아세안, 호주 등의 중견국들은 전략적 선택을 강요받는 도전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 단장은 아세안이 국제 외교무대에서 가진 특유한 '집단으로서의 힘'에 주목하며 "아세안이라는 동심원적 협의채가 우리와 공동의 리더십을 발휘하면 다양한 패권 변화에서 완충작용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남방정책의 양대 축이자 13억 인구대국 인도에 특화된 외교 전략이 '신남방정책 2.0'에 담겨야 한다는 충고도 잇따른다.
현 정부 들어 한·인도 정상 간 유대관계는 강화됐지만 아직 이렇다할 대인도 외교 방침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한·아세안 관계에 치중한 나머지 인도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인상마저 주는 분위기다. 외교부에서는 현재 인도 관련 업무를 아시아태평양국 내 아태2과가 호주, 뉴질랜드, 파키스탄, 부탄 등 관련 업무와 함께 처리하고 있다. 외교부가 대중국외교 강화 차원에서 동북아국을 사실상 '중국국'으로 만들고 아세안국을 신설한 것과 비교해도 차이가 확연하다. 이와 관련해 정부 고위관계자는 "한·인도 교역 규모를 2030년까지 500억 달러로 늘릴 목표를 잡고있다. 인도는 원자력발전소 건설 이야기가 있어 협력을 넓힐 여지가 크다"며 인도와의 경제협력 확대 전략을 준비 중임을 시사했다.
[김성훈 기자 / 안정훈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