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2 (목)

[조호연 칼럼]아직은 조국을 놓아줄 수 없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민들께서 이제 조국 장관을 좀 놓아달라”고 당부했다. 그렇게 되기는 힘들 것 같다. 우선 검찰의 조국 수사는 계속되고 있다. 재판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는 한 대중의 관심은 식지 않을 터이다. 둘째로 시민사회의 갈등과 혼란 역시 약화될 기색이 없다. 오히려 4월 총선이 다가올수록 격화될 것이다. 문 대통령의 소망은 소망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경향신문

검찰 수사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다. 4개월간 탈탈 털었지만 지위를 이용한 권력형 비리는 적발하지 못했다. 초라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물론 조 전 장관의 중도 사퇴를 끌어낸 것은 성과일 수 있다. 하지만 ‘더 센’ 추미애 장관을 만나게 됐고, 윤석열 총장의 측근들이 무더기로 잘려나갔다. 검찰개혁에 반대해온 검찰이 개혁 입법에 결정적 역할을 한 점도 아이러니다. 수사 과정에서 사건이 아니라 사람을 수사한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은 검찰 신뢰에 감점 요인이다. 세상이 검사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검사가 다 맞다는 이른바 ‘검동설’을 신봉한다는 구설에 오른 것도 마찬가지다.

다른 관점으로 보면 조국 사태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조국과 검찰, 그리고 양측에 공감하는 두 개 시민사회의 거대한 감정이입이 작용하면서 거대한 등장인물군이 형성됐다. 갈등 구도도 선명했다. 예컨대 조국에게 검찰은 개혁 대상이었지만 검찰에 조국은 수사 대상이자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존재였다. 이는 검찰 수사를 사활적 게임으로 몰고 갔다. ‘탄핵 보수’에 조국 수사는 천만뜻밖의 선물이었다. ‘상처 입은’ 조국을 공격함으로써 적폐의 치부를 가리고 바닥에 떨어진 존재감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반대로 진보에 조국 사태는 치명적 약점이 되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줄곧 공세를 펴온 진보는 수세에 몰렸다.

한국 사회는 ‘조국 드라마’와 관련해 공명하거나 반발하면서 집단적 확증편향이 작동하는 거대한 두 개의 사일로를 형성했다. 이런 관계 틀은 쉽게 붕괴되지 않을 것이다. 보수와 진보 모두 조국 사건에 커다란 정치적 이익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사회는 선악의 문제를 다루는 데 서툴다. 흑백논리 탓에 대화와 타협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조 전 장관은 어느 정치인보다 더 정치적 인사로 자리매김했다.

조국 드라마에 동력을 제공한 분노를 빼놓을 수 없다. 분노의 대상은 ‘바른말 하는 진보의 위선’과 ‘회복 불가 수준의 계층화 사회’, ‘같은 사안에 정반대의 해석을 하는 상대 진영’ 등 다양했다. 공동체 구성원이 둘로 갈려 서로에게 분노하는 상황에서 연대와 공감, 신뢰는 자라날 수 없다. 더구나 한국은 ‘아무나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 민주국가’(자크 랑시에르)다. 이런 척박한 토양 속에서 통합이나 소통은 기대하기 어렵다. 시민사회의 의견이 갈라지고, 상대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려는 행태만 반복될 뿐이다. 그 결과는 분노의 확대와 심화다.

혹자는 조국 사태의 진실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묻고 싶다. 사회 전체가 이분법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합의하는 진실이 가능한가. 가뜩이나 진실은 누군가의 주장 속에서만 존재하고, 한쪽 진영에서만 통용되는 사회 아닌가. 한쪽의 진실은 반대쪽에는 비수가 되는 구조이다. 그러니 누군가 진실을 주장하면 그것이 진실인지 여부를 가리기보다 그 사람의 허점을 공격하는 일이 벌어진다. 도덕적 하자나 행실에 문제가 없는 사람은 드물고, 그런 점이 드러나면 그가 주장한 진실은 설득력을 상실한다. 진실이 정치적 의도로 살해당하는 셈이다. 결국 사회 전체가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미치코 가쿠타니) 상황으로 몰려간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검찰은 조 전 장관을 ‘가족비리’ 및 ‘감찰무마 의혹’ 혐의로 재판에 회부했다. 종착역이 가까워진 것이다. 재판이 끝나면 조국 사태는 파장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조국 사태에 내장된 정치·사회적 폭발력은 여기서 끝날 정도로 간단치 않다. 사실 조 전 장관의 유무죄는 사태 전반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볼 때 빙산의 일각이다. 몸통에 해당하는 불공정과 불평등, 계급과 세습 문제는 해결을 위한 초보적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검찰개혁도 완성되려면 멀었다. 앞으로도 조 전 장관은 끊임없이 소환될 터이다. 희생양으로서든(진보) 위선자로서든(보수) 한국 사회는 아직 그를 필요로 하고 있다.

▶ 장도리 | 그림마당 보기

▶ 경향신문 최신기사

▶ 기사 제보하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