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로 관심과 이득을 취하는 삶은 끝내 몰락하는 사례가 꾸준함에도, 우리 사회는 이런 식의 ‘관종’이 되레 늘고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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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리플리라는 드라마를 기억하시나요? 2011년에 방영되어 꽤 화제가 되었던 미니시리즈입니다. 작품의 여주인공은 인생의 밑바닥에서 벗어나, 부와 성공을 얻고 싶어서 학력 위조와 거짓말로 자신을 포장하는 방법을 택합니다. 완벽할 줄 알았던 거짓말은 점차 과거를 아는 증인들이 나타나며 위기에 처하지요. 하나를 덮으려 더 큰 거짓말을 하고,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며 꼬리에 꼬리를 물어가다 끝내 몰락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리플리증후군. 이제는 꽤 익숙해진 단어입니다만, 사실 의학적으로 정의된 병명은 아닙니다. 사회적으로 조금씩 사용되다, 어느새 암묵적 합의가 이루어진 신조어격의 사회적 용어라고 보는 것이 옳겠지요. 미국 텍사스 출신의 작가, 패트리샤 하이 스미스의 ‘재능있는 리플리 씨’라는 작품의 주인공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원류인 미국보다, 오히려 한국 사회에서 그 사용량이 압도적이라는 게 흥미로운 사실인데요. 그 본래의 뜻이 무엇인가와 별개로, 거짓말로 삶을 변화시키려는 사람들과 거짓말을 덮으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서 꽤 자주 발견되기 때문은 아닐까 합니다.
작년 여름에도, 한 젊은이의 구속 수감이 우리 사회를 큰 충격으로 몰아넣었습니다. 한국의 워런 버핏이라 불리며, 주식투자로 400억원대 자산을 형성했다고 주장하던 고액기부자. 저소득층 대학생을 위해 수십억원 이상을 기부함과 동시에 언론매체에 보도되고, 사회적 존경을 받았지요. 그러나 사실은 자산은 실체가 없었으며, 타인의 돈을 모아 기부해 온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사기죄로 구속되었습니다.
그가 구속되기 3년 전쯤, TV 촬영장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습니다. 갓 서른 살이 넘은 나이. 나와 동갑내기인 그에게서 어쩐지 연배가 무색한, 너무 오랜 세월 쌓인 듯한 지친 눈빛이 느껴졌습니다. ‘너무 바쁘고 유명한 사람이라 몸이 힘든 걸까? 근데 돈이 저렇게 많은데 왜 저렇게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바삐 살지?’ 혼자 되뇌다, 이런 생각을 하는 자체가 철부지인 건 아닐까 싶어 얼굴을 붉혔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의 지친 눈빛은 많은 스케줄보다, 불안과 자기 정당화 사이에서 끝없이 줄을 타던 흔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애당초 거짓말로 받은 관심과 사랑이었기에 자신의 몫이 아니었지만, 이미 맛보아버린 후엔 쉬이 놓을 수 없었겠지요. 어쨌든 좋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정당화와 들켜버릴지 모른다는 불안의 나날과 공존하는 사회적 명성이라는 이름의 달콤한 열매. 어쩌면 미디어가 주목하지 않았더라면, 인터뷰하지 않았더라면, 대대적인 보도가 되지 않았더라면 하는 후회를 할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거짓말로 관심과 이득을 취하는 삶은 끝내 몰락하는 사례가 꾸준함에도, 우리 사회는 이런 식의 ‘관종’이 되레 늘고 있습니다.
이제는 유튜브의 등장으로, 방송미디어가 먼저 발굴하지 않아도 자신을 포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었으니까요. 그 방법 또한 교묘해져서 이전에는 높은 학력, 선행, 업적의 과장 등 자신을 부풀리는 방식이 주가 되었다면, 이제는 자신의 어려움을 커밍아웃하며 대중의 응원, 이익을 얻는 방식마저 생겨나고 있습니다. ‘투레트증후군’이라는 장애를 연기해 20만 명이 넘는 구독자의 응원과 지지를 받던 한 유튜버의 사례처럼요. 얼마 안 가 그가 장애를 연기하고, 과장하며, 돈을 벌기 위해 지어낸 상황들이라는 게 들통나 버렸지만 말입니다.
거짓으로 황금알을 낳으려는 욕망이 뉴미디어라는 시스템과 맞물려 그 어느 때보다 활개를 치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는 타인에 대한 존경과 호의, 응원과 지지 같은 순수한 감정마저 한번은 의심해 보아야 하는 불신시대로 더욱 더 빠르게 흘러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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