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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일자리 대전환시대②] 노동3권 없는 노동자 54만명···플랫폼 일자리 안전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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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사각지대 방치된 플랫폼 노동자

앱으로 지시받는 개인사업자 분류

배달종사자 산재보험 적용 외면

배민 라이더들은 단체교섭 요구

프랑스 노동3권 줘, 미국 논쟁 계속

중앙일보

영국 런던에서 우버 사용자가 앱을 통해 차량을 호출하고 있다. 런던시는 지난해 11월 우버에 대한 면서 갱신을 불허했다. 이에 따라 우버 운전자도 직업을 잃게 됐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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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토바이 배달 노동자(라이더)가 꾸린 라이더유니온은 지난 2일 국내 1위 음식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인 '배달의민족'에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플랫폼 노동자가 꾸린 단체가 단체교섭을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라이더유니온은 기자회견을 통해 “주문 수와 기상 상황에 따라 추가 수수료가 매일 바뀌는데 하루 단위로 바뀌는 배달 수수료 책정 정책을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 런던교통공사는 지난해 11월 차량공유 서비스 우버와 운전자에 대한 영업면허 갱신을 불허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독일 프랑크푸르트 지방법원도 우버에 대한 영업 금지명령을 내렸다. 법원은 “우버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렌터카 업체를 호출하는 식으로 운영해 왔던 차량 호출 서비스를 금지한다”고 판결했다.

플랫폼 노동이 확산하면서 사회 갈등이 폭발하고 있다. 스마트 기기와 기술 혁신으로 탄생한 플랫폼 노동이 기존 노동 시장과 충돌하고 있다. 열악한 플랫폼 노동자의 처우도 문제가 되고 있다. 플랫폼 노동에 대한 사회적 갈등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 건 플랫폼 노동에 관한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 노동은 '디지털 부둣가'에 비유된다. 사무실과 같은 전통적인 작업장은 사라지고 스마트폰 등으로 업무 지시를 받아서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디지털 플랫폼노동 논의와 검토’ 보고서에서 “플랫폼 노동은 전통적인 계약방식이 아닌 독립사업자 고용 형태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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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라이더 유니온 출범식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라이더유니온은 음식 배달 노동자로 꾸려진 단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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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일자리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10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플랫폼 노동자는 47만~54만명에 이른다. 이는 국내 전체 노동자의 1.5~2.3%에 이른다. 한국은행은 '글로벌 긱(Gig) 경제 보고서'에서 “2017년 글로벌 디지털 노동 플랫폼 산업 규모는 820억 달러(약 94조원)로 전년 대비 65% 성장했다”며 “플랫폼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긱 경제는 확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유 경제, 또는 긱 이코노미에 참여하는 한국 성인이 전체 중 21.5%나 된다(글로벌기업가정신연구(GEM) 리포트 2019)는 연구 결과도 있다. 같은 연구에서 미국은 10.8%에 그친다.

플랫폼 노동자는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상태다. 현 노동법에 따르면 앱을 통해 지시를 받아 일하는 라이더라 하더라도 개인사업자로 분류된다. 하지만 앱을 통해 업무지시를 받고 이에 따라 노동력을 공급한다는 차원에서 개인사업자가 아닌 비정규직 노동자로 봐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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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노동구조.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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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노동자를 둘러싼 논란은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 보호 정책에서 앞선 프랑스가 2016년 플랫폼 노동자에게 노동 3권을 부여한 사례를 제외하면, 유럽과 미국에서도 플랫폼 노동 갈등은 여전하다. 갈등의 핵심은 “플랫폼 노동을 새로운 형태의 노동으로 인정할 수 있느냐”이다. 새로운 형태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측은 이미 플랫폼 경제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이를 인정해야 플랫폼 노동자의 처우도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하는 쪽은 플랫폼 노동은 '변형된 형태의 착취'라고 인식한다.

실제로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 직원인 정우정(30) 씨는 앱 이코노미가 만들어낸 새로운 직종에서 일하고 있다. 영업을 맡던 정 씨는 회원사 메뉴 입력과 메뉴 정책 수립 등을 맡고 있다. 정 씨는“대형 프랜차이즈 업소 메뉴판을 등록하는 일은 자동화하기 쉽지만 1인 사장이 운영하는 작은 가게는 나 같은 본사 직원이 입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아한형제들엔 정 씨와 비슷한 업무를 맡은 직원 수만 100명 정도다. 이 회사엔 서빙용 로봇 개발을 담당하는 만드는 직원도 있다. 플랫폼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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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에서 지난해 4월 열린 우버 반대 집회에 참가한 택시. "우버는 떠나라"는 문구를 붙인 택시의 모습. [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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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낡은 노동법은 제자리걸음이다. 전문가들은 노동법을 개정해 플랫폼 노동자를 제도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대립적 노사 관계가 뿌리 깊은 한국의 현실에서 노동법 개정은 쉬운 일이 아니다.

플랫폼 노동자를 기존의 경직된 노동 체계 안에 구겨 넣는 식의 문제 해결은 대안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업주와 노동자의 계약 관계가 점점 흐려지고 있다”며 “기존의 근로기준법이나 노동자에 대한 규정 등을 새롭게 정의해 연금, 보험 등의 부분에서 기업과 노동자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플랫폼 노동자 보호 정책 마련에 뒤늦게 뛰어들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이달 초 발표한 신년사에는 플랫폼 노동자를 위한 정책이 포함됐다. 이 장관은 “전속성이 없거나 약한 배달종사자의 보호를 위해 노사 협의, 전문가 토론·연구 등을 거쳐 산재보험 적용·징수 체계를 개편하겠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플랫폼 노동자를 포함해 산재보험 적용 범위를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플랫폼 노동자 처우 개선을 논의하기 위한 사회적 대타협 기구도 이르면 올해 상반기 신설될 예정이다. 하지만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과거 대타협 기구 전례를 봤을 때 얼마나 실효가 있을 진 미지수다.

이런 이유로 표준계약서 도입과 보험 등 사회안전망 우선 확보가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은 “노동법 개정은 노사 합의 등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니 플랫폼 노동자를 위한 분야별 표준계약서 도입과 보험 등 사회안전망 확보에 나서는 게 우선”이라며 “법 개정이 아닌 시행령 개정을 통해 가능한 수준에서 대안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기헌·임성빈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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