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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재판이 이상해요" 법관 기피 신청, 언제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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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the L][친절한 판례씨] "공정한 재판 가능해도 일반이 의심하면 기피 가능" 결정 이후 찬반 논란

머니투데이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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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묵은 진영싸움 때문에 사법부까지 소란입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 재판들이 동시에 진행되는 데다, 몇몇 판사들이 총선 출마 선언을 하면서 정치열풍이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누구 판사는 어떤 쪽이냐' 하는 사회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판사도 사람이고 국민이니 정치 신념을 갖는 건 문제될 게 없죠.

문제는 판사가 증거와 법률이 아니라 정치 신념에 따라 재판하지 않을까 하는 주위의 잘못된 믿음입니다. 실제로 재판 당사자들이 법률대리인에게 재판 상황보다 담당 판사의 성향, 연고 등을 더 캐묻는 경우가 요즘 들어 많아진 것 같다고들 합니다.

이런 경우 '왠지 재판이 나한테 불리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어떨까요? 담당 판사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겠죠. 법률용어로 말하면 '재판부 기피를 신청해야겠다'로 바꿔볼 수 있습니다.

형사소송법, 민사소송법에 '법관이 불공정한 재판을 염려가 있는 때', '법관에게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려운 때' 재판부 기피 신청을 낼 수 있다고 돼 있기는 하지만, 당사자의 막연한 의심만으로 인정되지는 않습니다. 담당 판사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해야 해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방금 '원칙'이라고 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원칙에서 벗어난 예외가 있기 때문인데요. 대법원은 지난해 초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있어도 기피가 인정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2018스563). 판단 과정과 결과 모두 이례적이어서 소개합니다.

이 결정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의 이혼재판에서 나왔는데요. 임 전 고문은 1심에서 사실상 패소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항소장을 냈는데, 항소심 재판부가 정해지자마자 재판부 기피 신청을 냈습니다. 재판장이 삼성 쪽과 연관이 있어 자기한테 불리하게 판결할 것 같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임 전 고문 측은 재판장이 삼성 간부와 개인적으로 연락한 사실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는데요. 의혹의 주요 근거로 아래 문자메시지를 들었습니다.

'잘 계시지요. 인도 사업장에 가 있는 제 막둥이 동생이 A사장의 억압 분위기를 더 이상 못 견뎌 해서 이달 중이나 인수인계되는대로 사직하라 했습니다. 아직도 벙커식 리더십으로 부하를 통솔하는 A사장이 안타깝습니다. 그동안 진 신세는 가슴에 새깁니다.'

임 전 고문의 신청을 받아들여야 할지 따로 재판이 열렸고, 법원은 신청을 기각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를 뒤집고 재판부를 바꿔야 한다고 결정합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일반인의 관점에서 재판의 공정성에 관한 의심을 가질 만한 객관적인 사정이 있는 때에는 실제로 그 법관에게 편파성이 존재하지 않거나 헌법과 법률에 따라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있는 경우에도 기피가 인정될 수 있다."

요약하면 실제로 아무런 문제가 없어도 일방이 문제가 있다고 여긴다면 판사를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후 이 결정을 놓고 찬반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찬성하는 쪽에서는 학연·지연·혈연에서 벗어나 재판 공정성에 집중할 수 있게 한 결정이다, 판사들이 언제 어디서나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웠다며 호평했습니다.

하지만 반대 목소리도 작지 않았습니다. 법률용어는 명확히 쓰여야 하는데 대법원이 말한 '일반인'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비판, '일반인의 의심' 중에서도 합리적인 의심을 가려 판단해야 하는데 이런 판단을 생략했다는 비판, 앞으로 재판보다 판사 뒷조사에 더 열이 오를 것이라는 비판 등이 있었습니다.

이 결정은 아직까지 뒤집어지지 않고 남아있습니다. 아마 사법농단 의혹으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사건에서 다시 한 번 판단이 내려질 것 같은데요. 임 전 차장은 1심 재판부가 편파적으로 재판을 진행했다며 재판부를 바꿔달라는 신청을 냈습니다. 대법원은 7개월째 판단을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관련 조항

형사소송법 제18조(기피의 원인과 신청권자) ①검사 또는 피고인은 다음 경우에 법관의 기피를 신청할 수 있다.

1. 법관이 전조 각 호의 사유에 해당되는 때

2. 법관이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때

민사소송법 제43조(당사자의 기피권) ①당사자는 법관에게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때에는 기피신청을 할 수 있다.

김종훈 기자 ninachum2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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