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조선사, 세계 1위 공고히… 중형조선사, 잘하는 것 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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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한국에서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조선업계의 움직임이 일고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3월 대우조선해양 인수 전격 발표 후 한국 공정거래위원회, 유럽연합(EU)와 중국, 싱가포르, 일본 등 6개국에서 기업결합심사를 받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10월에는 카자흐스탄에서 처음으로 합병 승인을 받아 ‘매머드 조선소’ 탄생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현대重, 대우조선해양 인수 ‘가시밭길’
그러나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품기는 최근 싱가포르와 EU 등 주요 국가들이 불편한 심기를 내비추면서 난항에 부딪힌 모양새다. 경쟁당국들이 세계적으로 새로운 선박에 대한 주문이 1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에 있는 시점에 한국 거대 조선소의 합병이 자국 조선소에 잠재적인 위협이 될 것이라 우려하고 있는 탓이다.
우선 지난해 12월 1차 심사를 마친 싱가포르는 “두 회사의 합병으로 조선소 간 경쟁 체제가 약화할 수 있다”며 최근 2차 심사에 들어갔다. 싱가포르의 경우 합병 신청을 받은 뒤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1개월 내 합병을 허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2차 심사에 들어갔다는 건 독과점과 관련해 간과할 수 문제를 발견했다는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
특히,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싱가포르 규제 당국은 한국 조선소의 합병이 자국 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생산하는 기업에 피해를 줄 것이라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LNG는 에너지 시장이 천연가스 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생산기업이 높은 마진을 낼 수 있는 고소득 분야로 평가받는다. 현재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LNG 운반선에 대한 전 세계 주문서의 약 52%를 보유하고 있다.
싱가포르 경쟁ㆍ소비자위원회(CCCS) 또한 “합병을 계획하고 있는 한국 조선소 두 곳은 현재 LNG 운반선, 대형 컨테이너선 및 대형 유조선의 글로벌 최대 공급 업체”라며 “해당 합병이 성사될 경우, 해당 조선소 두 업체 간 경쟁이 제거돼 싱가포르 고객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U 또한 현대중공업의 합병작업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최근 EU 집행위원회는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에 대한 2단계 심층심사를 오는 5월 7일까지 90일간 진행한다고 통보했다.
앞서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4월 EU의 사전심의 절차를 밟았으며, 같은 해 12월 13일 본심사 신청서를 제출한 바 있다.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U 경쟁분과 집행위원은 “해상 운송은 유럽연합의 중요한 산업”이라며 “양 사의 합병이 가격을 높이거나 선택권을 줄이거나, 혁신이 줄어드는 등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신중하게 결정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유럽연합은 초대형컨테이너화물선이나 LNG선을 발주하는 선사들이 몰려있는 곳으로, 독과점을 규제하기 위한 기업결합 심사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실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최근 이탈리아 핀칸티에리와 프랑스 아틀란틱조선 합병과 관련해서도 크루즈선 점유율이 58%에 달한다며 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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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인수시 압도적 세계 1위 조선사 탄생
경쟁국의 딴지에도 불구하고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순탄하게 이뤄질 경우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21%가 넘는 ‘매머드 조선소’가 탄생하게 된다. IMF 외환위기 당시 생존을 위한 대기업들의 빅딜은 왕왕 존재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세계 조선업의 판도를 뒤흔들 공룡기업의 탄생이란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실제 외신들도 양사의 합병 소식이 전해진 직후 기대감이 섞인 목소리를 내놨다. 로이터통신은 “양사의 합병은 세계시장의 20% 이상을 좌우하는 회사의 탄생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미국 해운 매체 매리타임 이그제큐티브 또한 “합병이 성사되면 현대중공업은 조선업계의 자이언트가 된다”며 “합병 조선소는 중국 국영 조선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입지에 서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사의 합병이 완료되면 현대중공업은 압도적 세계 1위 조선사로 올라설 전망이다. 영국의 조선ㆍ해운 전문 분석기관 클락슨 리서치에 따르면 2018년 말 기준 현대중공업그룹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1114만5000CGT(점유율 13.9%)의 수주잔량을 보유했다. 2위는 584만4000CGT(7.3%)를 보유한 대우조선해양이다.
두 회사가 합쳐질 경우 총 수주잔량은 1698만9000CGT로 3위인 일본 이마바리조선소 수주 잔량의 525만CGT(6.6%)의 3배가 넘는다. 세계 조선업 점유율은 21.2%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배를 건조하는 도크도 현대중공업(11개)과 대우조선(5개)을 합친 16개로 늘어난다.
업계에서는 양사간 통합이 이뤄질 경우 특히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필두로 하는 친환경 기술시대의 조선시장을 주도적으로 끌고 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18년 말 기준 LNG선 분야를 살펴보면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총 42척의 LNG 선박을 수주했다. 전체 LNG선 시장의 절반을 웃도는 수준이다. 특히, 대우조선해양은 LNG 선박 건조 분야에서 앞선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된다.
양사의 합병은 ‘규모의 경제’ 실현으로 인한 가격 경쟁력 확보에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기술이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추면 수주전에서 가격 협상력은 자연스레 올라간다. 또한, 국내 기업간 출혈경쟁으로 인한 저가 수주 우려도 불식시킬 수 있다.
이와 함께 잠수함 건조 역량도 한층 업그레이드 될 전망이다. 양사는 잠수함 건조 등 해양방위분야에서 특출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그간 정부와 해군이 발주한 대형 함정과 잠수함 건조 대부분을 맡아왔다.
실제 한국방위산업진흥회의 ‘방산업체 경영분석’에 따르면 2017년 함정 분야 매출 총 1조6380억원 중 대우조선이 8838억원, 현대중공업이 4184억원으로 대우조선과 현대중공업이 전체 함정 매출의 79.5%를 차지한다. 두 조선사가 ‘한국조선해양’ 이름아래 기술을 공유하고 업무협력을 이뤄나갈 경우 해당 분야 국제 입찰에서도 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아직 조선업 경기가 본격적으로 회복되지 않아 일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국내 조선업계가 3사 체제에서 2사 체제로 개편되면 일정 부분 일감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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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조선, 생존위해 덩치 키우고 첨단기술 접목해야”
상황이 이쯤 되면서 국내 대형 조선사 뿐 아니라 중형 조선사, 기자재업체도 덩치를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글로벌 경기 약세와 불확실성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구조조정을 통해 중복투자를 없애고 스마트 선박, 스마트 조선소와 같은 혁신에 집중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최근 조선업계는 인공지능(AI)과 5G 증강현실(AR) 등 4차 산업혁명 기술로 무장하며 최첨단 IT산업으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일례로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KT와 스마트조선소 구축 협약을 맺고 ‘5G 기반 스마트 조선소’ 구축에 나섰으며, 최근에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해 기존보다 10% 이상 연료비 절감 효과를 내는 선박운전최적화 시스템을 개발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올해 중형 조선사들을 대상으로 한 인수합병(M&A) 작업이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기술과 생산에서 우위를 점하고 선종별로도 컨테이너선, 가스선, 해양플랜트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으나 향후 중국 기자재 경쟁력 향상 등이 위험요소가 될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투자와 생존을 위해서는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다수의 기자재사 간 합종연횡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연구위원은 “규모가 커지면 리스크가 높아진다는 단점이 있다. 시장이 위축됐을 때 많은 영업을 해야할 수도 있고, 또 영업을 하더라도 물량을 다 채울 수 없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장점은 각각의 회사에 드는 연구개발(R&D) 비용의 중복을 줄일 수 있고, 이로 인해 제품원가가 인하되면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이런면에서 조선업계의 인수합병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또한 “인수합병이 많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추세라기보다는 각 사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일환으로 보는게 좀 더 정확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형 조선사의 경우 인수합병이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선종이 겹치거나 과잉 출혈경쟁이 벌어지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최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선종을 특화해서 세계시장에 내놓는 등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지금보다 상황이 개선돼야 인수합병을 논할 수 있을 걸로 본다”고 말했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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